◇제 만년필 좀 살려주시겠습니까?/김덕래 지음/327쪽·1만8000원·젤리클
택배 상자에 담은 건 달랑 만년필 한 자루. 주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몇 년간 매일 쓰던 거라 정들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힘들겠지요?”
택배 수령자는 만년필 수리공인 저자다. 저자는 지금까지 1만 자루가 넘는 만년필을 손봤다. 전국 각지에서 수리를 부탁하며 만년필을 보내온다. 주인의 손에 다시 쥐어지기까지, 또 고장이 나기까지 다양한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펜 닥터’인 저자가 만년필을 수리하면서 기록한 글 중 33편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있었다. 저자에게는 본인이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큰형님이 있었다. 저자의 부모님은 그 상실을 마주하기 힘들어 큰아들의 사진을 모두 없앴지만, 잊는 게 많아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얼굴만이라도 기억하고 싶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그때 저자는 “어머니에게도 아들을 추억할 만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애정 어린 마음이 생겨났다.
이 책이 특별한 건 이런 섬세한 통찰이다. 저자는 만년필에 대한 정보를 열거하거나 사연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자신과 주변, 세상의 이치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위로한다. 매끄럽지 않은 필기감 때문에 수리를 맡기며 “제가 예민한 걸까요?”라고 묻는 손님에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만년필과 아주 잘 맞는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 다루기 힘들고 때로는 귀찮은 이 만년필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도 만년필 100여 자루를 소장한 ‘헤비 컬렉터’다. 그러나 그는 명품 만년필의 조건은 단 하나, ‘함께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죽은 만년필을 살리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다친 마음은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