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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 교통카드… 조청캐러멜… K색채 입힌 기념품 눈에 띄네

입력 | 2022-12-31 03:00:00

[토요기획]관광기념품의 진화
한류 열풍에 최근 관광객 급증… 다양한 기념품 앞세워 공략나서
대게딱지장 등 특산물 활용하고, 반가사유상 활용 컬렉션도 인기
영세업체 판로 확보 못해 발동동… 관광공사 뒤늦게 판촉 지원 나서



지난달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82 터미널’ 팝업 매장. 일주일간 2만여 명에 달하는 고객이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관광기념품을 구매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최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82 터미널’ 팝업 매장은 ‘힙한’ 특산물을 구경하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싱가포르에서 4박 5일 여행을 온 수전 씨(45)는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으로 충남 서천 김스낵 6봉지와 경북 안동 조청캐러멜 한 박스를 샀다. 그는 “홍익대 앞, 경복궁 등 관광지에서 본 한국 간식들은 생김새부터 선물용으로 탈락이었는데 이건 눈에 띄게 예쁘다”며 “싱가포르에선 구할 수 없는 제품이라 여러 개 구입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손지영 씨(31)는 장바구니에 전남 고흥 유자 샌드웨이퍼를 3개나 담았다. 올여름 다녀온 전남 여행이 새록새록 떠올라서다. 손 씨는 “지난번 여행 중 먹은 유자 쿠키 맛이 종종 그리웠다”며 “마침 비슷한 제품을 발견해 회사 동료와 나눠 먹으려 샀다”고 했다.

국내 관광기념품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유명 관광지 기념품 가게에 즐비했던 저가의 천편일률적인 구성을 벗어나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디저트나 세련된 디자인의 패션,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으로 한국 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외국인들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늘어난 내국인 여행객들의 높아진 눈높이까지 공략하며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 내외국인 모두 공략하는 힙해진 기념품
지난달 롯데백화점은 한국관광공사, 지역 제조사들과 손잡고 K푸드 기념품 8종을 팝업 매장에서 선보였다. 2019년 ‘문경약돌돼지육포’를 출시한 권용훈 대표(50)는 백화점과 협업해 패키지를 세련되게 바꾸고 나서야 기념품 시장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힌트를 얻었다. 권 대표는 “제품 자체는 매년 1만 개씩 꾸준히 팔렸지만 지역을 대표할 기념품 용도의 판매량은 늘 저조했다”며 “제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고 싶게끔 하는 패키지나 마케팅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게게딱지장’을 선보인 손현규 영덕농수산 이사(48)는 “기념품 수요, 외국인 식문화를 고려해 기존 병, 캔 형태를 소분된 파우치 형태로 바꿨다”며 “준비한 초도 물량이 전부 팔려 퀵서비스로 급히 조달하기도 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된 ‘남해로가게’ 팝업 매장에서는 남해 마스코트 ‘나매기’를 활용한 화투 상품을 선보였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같은 기간 서울 종로구 서촌에선 경남 남해군이 운영하는 기념품 팝업 매장 ‘남해로가게’가 열렸다.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힙한 남해를 알리고자 브랜딩 전문 업체와 협업했다. 푸른색을 강조한 2층짜리 매장에선 남해 청년 소상공인이 만든 먹거리와 비누 등 공예품이 판매됐다. 인근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모여들며 입구에 비치해둔 영문 팸플릿이 동나기도 했다. 남해로가게 관계자는 “선물용으로 좋은 티백, 건어물 등 먹거리와 남해 마스코트가 그려진 화투가 외국인에게 인기”라며 “팝업에 관심 많은 내국인 20, 30대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최근 눈에 띄게 트렌디해진 관광기념품은 외국인 수요뿐 아니라 내수 시장까지 겨냥하고 있다. 국내 관광기념품 변화를 본격화시킨 것도 사실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내국인 관광 수요였다. LF 헤지스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와 손잡고 반가사유상 컬렉션을 선보였다. 티셔츠, 머플러 등 총 11종으로 구성됐으며 국내 MZ세대를 겨냥해 캠퍼스룩 감성을 더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국내 MZ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말을 빌려 탈 때 사용하던 마패 모양 교통카드를 출시했다. 세븐일레븐 제공

세븐일레븐은 암행어사 마패 모양을 본뜬 교통카드를 판매했다. 지난해 ‘서울상징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상에 오른 작품을 공동 개발한 상품이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전통 문화를 담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에겐 기념품으로, MZ세대에겐 재미있는 ‘조선 힙’ 아이템으로 주목받았다”며 “강남역 등 내외국인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에선 입고 직후 품절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정책적 지원 부재로 영세했던 기념품 시장
국내 관광기념품은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경 K팝 등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조금씩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의 관광기념품은 오랫동안 ‘도쿄바나나’ 등 관광기념품이 기업화한 일본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 품질과 다양성이 부족하고 영세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특색 있는 전통문화를 보유했음에도 기념품이 영세한 수준에 머물렀던 것은 범국가적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란 것이 관광업계의 분석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기념품이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다 보니 소규모 업체들만 생산했고 그들의 유일한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이었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일회성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그쳐 기념품의 품질을 높여 주요 산업으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전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은 1998년부터 열렸지만 수상작을 선정하고 홍보를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왔다. 지난해에야 수상작을 대상으로 판로까지 지원하게 됐다.

생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지원이 미치지 못했던 만큼 기념품으로서의 부가가치도 부족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맛과 향 등 기본적인 품질을 갖췄어도 디자인이 선물로서 적합하지 않거나 외국인의 식문화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서수정 롯데백화점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시시호시 팀장은 “지역 생산자분들이 대부분 연로하시다 보니 시장 트렌드나 유통상 필요한 절차에 대해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유통 채널별로 맞춘 판매가 설정, 새로운 디자인 개발 등을 돕고자 다각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기념품을 성공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판로 역시 부족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공항, 기차역이나 대형 유통채널에 중소업체가 자력으로 입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 기념품 업체 관계자는 “기념품은 객단가를 높게 책정할 수 없는 만큼 목 좋은 자리에서 물량 싸움을 해야 하지만 지자체나 대기업의 도움 없이 좋은 판로를 개척하기는 어렵다”며 “특히 공항의 경우 입찰 비용이 막대할 뿐 아니라 매장 직원만 2, 3명을 둬야 해 넘기 힘든 벽”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관광기념품이 다양화되고는 있지만 아직 해외의 관광 강국과 비교해 ‘대표 상품’이 부족한 이유다. 면세점 관계자는 “공항은 개별 입찰하지 않는 이상 면세점을 거쳐 입점해야 하는데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면세점 입장에선 디자인 등 상품성이 기대에 못 미치는 기념품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 “K컬처 위상 맞춰 기념품 산업도 달라져야”
관광업계에서는 세계적으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급등한 시점인 만큼 민관이 협력해 관광기념품 산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고 오는 관광객들은 과거 가깝고 싼 맛에 한국을 찾던 관광객들과 씀씀이와 기대치가 완전히 다르다”며 “K콘텐츠, K푸드 등을 활용한 유무형의 기념품을 적극적으로 선보일 적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 입국자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가 전면 해제된 10월 이후 외국인 관광객은 급속 오름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10월 방한 외래 관광객 수는 47만609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5% 폭증했다. 국적은 다양해지고 씀씀이는 커졌다. 올해 1∼10월 미국 국적 방문객이 41만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17만 명), 필리핀(15만 명) 등이 뒤를 이었다. 2019년 같은 기간에는 중국, 일본, 대만 순이었다. 올 들어 1인당 관광 수입 규모가 가장 컸던 3월은 1인당 관광 수입이 1만68달러로 2019년 3월(1342달러)의 7배 넘게 급증했다.

변화하는 지형에 발맞춰 정부도 관광진흥책 확대에 나섰다. 1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7차 국가관광전략회의를 열고 2023∼2024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정했다. 이날 의결된 제6차 관광진흥기본계획(2023∼2027년)은 K콘텐츠 등을 중심으로 20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모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앞서 2, 3일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박람회·공모전’이 처음 개최되기도 했다. 식품부터 화장품, 공예까지 아우르는 로컬 브랜드들과 면세점, 홈쇼핑 등 대기업 바이어가 총 100여 곳 참여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내년엔 해외 유명 기념품을 소개하는 부스를 설치하는 등 박람회를 확대 운영할 것”이라며 “향후 미술품, K드라마 등을 접목한 고부가가치 기념품 산업이 활성화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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