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오아시스’ 열린 사우디 ‘비전 2030’서 시작된 개방 물결 모래암석이 빚은 신비의 협곡 놀라움 가득한 사막의 풍경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고대도시 알울라에 있는 ‘코끼리 바위(Elephant Rock)’. 해 질 녘 노을빛에 바위 색깔은 황금색에서 붉은색으로 시시각각 변해 간다. 바위 앞에 있는 모래사막 카페에는 차를 마시며 코끼리 바위의 노을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횃불이 켜지고, 밤하늘 별이 쏟아질 때까지 사막의 고요함에 빠져드는 시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뜨거운 모래사막과 낙타밖에 없을까? 1970∼80년대 ‘중동 붐’ 당시 한국의 건설 근로자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일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던 곳. 석유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광대국을 꿈꾸며 글로벌 관광객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MBS)이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 국가 개조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의 핵심도 관광산업이다.》
○사막에 비를 몰고 온 손님
이달 10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 국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는 활주로에 착륙하지 못하고 몇 바퀴 선회를 했다. 창밖을 보니 활주로에 빗방울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사우디에서 소낙비를 맞게 될 줄이야! 이날 오전 내내 내린 비로 리야드 시내는 물바다가 돼 버렸다. 강수량은 불과 10∼20mm에 불과했는데도 배수시설이 부족한 사우디에서는 곳곳에서 맨홀이 역류하고 도로가 끊겼다. 현지 여행사 직원 지야드 알말키 씨(25)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산을 써봤다”며 “여러분들은 귀한 비를 몰고 온 손님”이라며 싱글벙글했다.사우디는 요즘 겨울이다. 해발 700m의 도시 리야드에서 비가 온 것도 신기한데, 날씨도 쌀쌀했다. 영상 12도. 사막 날씨를 예상하고 반팔만 가져왔는데, 추웠다. 자세히 보니 리야드 사람들은 패딩 점퍼나 양털 가죽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우디는 남한 면적의 20배 정도로 큰 나라다. 해변이나 사막도 있지만, 대추야자 숲이 정글처럼 우거진 오아시스 도시도 많다. 북쪽의 요르단·이라크와 가까운 타부크 지방과 남쪽 예멘 인근 아시르 고원지대에는 겨울에 0도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사우디는 타부크주 네옴시티 인근에 건설 중인 트로제나 스키장에서 2029년 겨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사막의 고대도시 알울라
요즘 사우디에서 유럽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문명 도시 알울라(AlUla)다. 리야드에서 1100km 떨어진 알울라는 카라반 무역이 융성하던 고대 다단 왕국(기원전 6세기∼기원전 1세기)의 수도였으며, 요르단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 왕국(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의 중요 도시였다.약 5억 년 전에 형성된 거대한 사암(砂巖) 산맥이 풍화와 침식을 거쳐 만들어진 알울라의 독특한 자연 풍경은 마치 외계의 행성처럼 보인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대협곡, 버섯 모양의 신기한 바위들이 펼쳐져 있는 튀르키예(터키)의 카파도키아,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된 중국의 장자제(張家界)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알울라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는 ‘코끼리 바위’. 알울라 코끼리 바위는 해 질 녘 노을빛에 황금색으로 물들어 간다. 바위 앞에 있는 모래사막에는 구덩이를 파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해가 지고 횃불이 들어오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위의 색을 감상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하다 보면 사막의 고요함 속에 빠져든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길 기대하는 순간이다.
헤그라 지역에 있는 나바테아 왕국 최대 무덤 건축물인 ‘카스르 알파리드’.
헤그라의 바위 협곡에는 ‘반구대 암각화’처럼 수천 년 전의 문자와 암각화도 있다. ‘자발 이크마’ 계곡의 아람어, 타무드어, 다단어, 나바테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등 온갖 고대 언어로 쓰인 명문으로 가득하다.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 상인, 순례자들이 남겨놓은 메시지다. 그래서 이곳을 ‘오픈 뮤지엄’ 또는 ‘고대의 트위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만난 프랑스 학자 뮈라테 나탈리 교수는 “바위에 쓰인 수많은 고대 언어는 아랍어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나바테아 왕국의 연회장으로 쓰였던 네모난 홀인 ‘알디완’.
○사막의 협곡 속에 지어진 수영장과 콘서트홀
해비타스 알울라 리조트의 풀장 너머로 보이는 장엄한 협곡 풍경.
명상하는 파란색 옷을 입은 여인 모습의 예술품이 놓여 있는 해비타스 알울라 리조트 계곡 바위.
알울라(사우디아라비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