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사진이 갖는 권력은 무엇일까요. 관객·독자의 눈을 잡아두는 능력이 첫째겠지요. 몰입 권력입니다. 다음은 영향력. 즉 관객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거나 흔들게 하는 힘입니다. 사건을 폭로하거나 사물을 제대로 보여주는 힘입니다. 사진이 이 두 힘을 다 가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있어도 권력으로서의 사진은 성공작입니다.
사진은 2차원 평면 시각 예술입니다. 회화작품과 비슷한 매체이자 구조입니다. 그래서 사진이 권력을 가지는 방식은 그림과 유사합니다. 문학과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사진 또한 구성의 4단계, 즉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이야기를 이끕니다. 회화가 작가의 상상과 관찰을 손과 붓으로 그려내는 것이라면, 사진은 기계에 의존합니다. 작가의 감정과 느낌 대신 카메라라는 ‘차가운’ 기계의 메커니즘과 렌즈를 통한 빛의 왜곡과 저장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사진이 이야기를 꾸며 시각작품이 되고, 그 결과로 권력을 만드는 과정을 기승전결로 풀어보겠습니다.
① 기 (起·introduction) : 공간 설정
사진가는 맨 먼저 특정한 소재를 특정 공간으로 한정해 앵글을 잡습니다. 사진은 개방성이 좋은 예술 같지만 오히려 공간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폐쇄합니다. 평면 4각 매체의 한계이기도 하고 공간이 제한돼야 관객들이 집중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집중력 높은 스릴러 영화는 대부분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소재입니다. ‘오징어게임’, ‘큐브’,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달리는 기차), ‘에어포스 원’(비행 중인 항공기), ‘나이브스 아웃-글래스 어니언’(외딴 섬) 등은 모두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2020년 10월
공간과 시간. 난학(蘭學·네덜란드 학문) 연구가인 일본학자가 번역했으리라 짐작하는 단어들인데요, 저는 이 번역에 경의를 표합니다. 동양에선 ‘간(間)’이 공간과 시간을 모두 표현하는 뜻이긴 했습니다. 외양간 곳간 막간 등 우리말에도 쉽게 녹아있고요. 도교에선 사람 세상을 ‘인간(人間)’이라 했습니다. 개념 범위가 넓습니다. 영어로 Space, Time을 공간 시간, 즉 시공간이라고 쉽게 엮을 수 있을 만큼 둘은 상통하고 연결된 세계임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번역입니다.
사진은 시·공간(3차원)을 동시에 포집해 2차원 평면 안으로 가두는 매체입니다. 공간과 시간의 미학입니다. 기계적으로는 빛이라는 물리적 소재를 활용하죠. 사진가가 선택한 공간 속이 폐쇄된 압박이라면 시간은 통제 가능한 기술입니다. 프리킥을 차는 축구선수를 생각해보시죠. 선수의 두꺼운 허벅지에서 강한 슈팅이 나옵니다. 이를 공간에 비유됩니다. 기본이 됩니다. 또 선수는 발목을 이용해 킥을 하죠. 기술입니다. 이 기술로 공을 통제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차게 됩니다. 힘에 기술이 추가되고 자신만의 궤적이 완성됩니다. 공간에 시간이 끼어들었으니 이제 사진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죠. 공이 날아갑니다.
2018년 9월
③ 전 (轉·turn) : 소재의 연결과 작가의 해석
촬영이 끝났습니다. 남은 것은 사진가의 선택과 해설. 달랑 한 장만 찍는 사진가는 거의 없으니 사진 한 장을 선택하거나 여러 장의 사진을 선택해 엮고 제목을 달거나 설명을 붙이죠.
사진 안에는 여러 소재들과 구성요소들이 있습니다. 메인 소재와 배경, 부제를 나눠 가지면서 소재들끼리 권력관계를 갖습니다. 이 소재들은 연결돼 있습니다. 상반된 소재는 대칭을 이루고, 비슷한 소재는 하나의 주제가 됩니다. 물론 앵글을 잡을 때 사진가는 이미 주제와 부제를 대략 잡아놓지요. 영화나 연극, 드라마에선 등장 캐릭터들이 연결되고 갈등을 일으키며 이야기가 전개되죠. 사진도 이와 비슷합니다.
제목과 설명은 대부분 텍스트(문자나 글)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질적인 상승이 일어납니다. ‘기-승’이 공간과 시간을 포집하는 물리적 과정이라면 ‘전’에선 다른 과정, 즉 텍스트가 개입하기 때문이죠. 닫힌 공간과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재료와 소재를 연결해 이야기를 구성하는데요, 일종의 ‘플러스알파(+α) 역할을 하면서 독자의 추론과 상상을 돕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당연히 개입되고요, 메시지 전달에 유리한 장치입니다.
2021년 8월
④ 결(結·conclusion) : 여운(餘韻) - 관객의 해석
기-승-전까지의 의사 결정은 작가가 했습니다. 이제 관객이 의사 결정할 시간입니다.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건을 상상하고 해석하게 합니다. 닫힌 공간에 한 순간만 포착된 제한된 소재만을 제공하지만 사람의 상상력은 오히려 여기에 여백을 만들어 버립니다. 순간으로 정지된 화면이 오히려 더 큰 상상력을 부르는 ‘여운의 역설’을 부르는 것이죠. 동영상보다 강한 정화상의 힘입니다. 관객은 2차원 평면 사진을 3차원으로 확장해 이해하고 추론하고 추측합니다. 4각 앵글 밖의 상황도 상상합니다.
2018년 7월
▽작가+공간+시간+소재+해설+독자가 연결되며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시간과 소재를 포획하고 설명을 붙인 것이 작가의 의도인데요, 이것이 마지막 ‘결’ 단계를 거치며 독자의 해석으로 연결되고 사진 권력은 탄생합니다. 기-승-전-결의 모든 단계는 연결돼 있습니다. 매 단계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졌지요. 물론 결정권은 1차적으로 작가가 가졌습니다. 의도가 다분한 메시지는 한 방향으로만 흐를 테니까요. 처음 정해진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플랫폼은 처음 선점한 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지죠. 물론 가끔은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도 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관객이 의사결정을 다르게 하면 사진이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작가도 평론가도 미리 가늠하기 힘들죠.
독자의 상상과 해석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사진을 보며 상황, 분위기, 소리 등을 5감을 동원해 상상하고 추론합니다. 이를 통해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 바뀌며 집단적인 영향력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분은 “사진이 사실을 통해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글쎄요? 그러지 않을 수도 있죠. 진실을 폭로하는 건 별개의 문제죠. 사진가가 처음부터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촬영하지는 않으니까요. 관객이 해석한 진실 또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가 가장 중요할까요? 이 또한 아닙니다. 의도인지, 우연인지는 작가만 압니다. 우연의 결과를 작가가 발견한 뒤 나중에 해석해 기록할 수도 있죠.
작가는 사진으로 영향력(권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갖지만, 반대로 독자와 관객, 대중이 ‘해석의 권력’을 작가에게 끼칠 수도 있습니다. 상호작용이죠. 이 때문에 창작자들은 늘 이런 ‘(관객의)영향력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2021년 10월 / 동아일보DB
▽사진은 소재 즉 촬영의 대상에게도 권력을 쓰기도 합니다. 사진이 촬영되는 동안 모델이 긴장하기 때문이죠. 사물은요? 양자역학에서, 관찰자가 개입될 때 실험의 결과가 다르듯 어쩌면 사물도 촬영 순간에는 긴장상태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델이 긴장하는 이유는 사진의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진가가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셔터 버튼을 잡은 사진가는 권력자 행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사진도 작가의 의도로 시작하지만 관객의 상상력으로 마무리되며 작가와 관객이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재탄생합니다. 작가만의 고유 권력이 아닙니다. 모든 사진가들이 겸손한 이유입니다.
(필자 사정으로 ‘고양이 눈썹’은 당분간 쉽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