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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값 폭락했다는데… 소비자들 “사먹는 가격은 제자리”[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3-01-02 03:00:00

“도-소매가 괴리 해결” 커지는 목소리



세종=서영빈 경제부 기자


《“한우 가격이 폭락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한우 세트를 구입하려 마트에 왔는데, 작년에 비해 싸졌다는 느낌을 못 받았어요. 1등급 한우 등심 2kg 세트가 24만 원이니 작년보다 겨우 2만 원 정도 떨어진걸요?” 명절 한우 선물세트를 사러 대형마트를 찾은 박지원 씨(35)의 푸념이다.

설 명절 대목을 앞두고도 한우 도매가격이 연일 급락하고 있다. 농가에서 사육하는 한우 수는 늘었는데, 경기 한파와 물가 상승의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탓이다. 수익이 급감한 농가에서는 어린 소를 팔아 사료 값을 메우며 도산 위기를 버티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의 소비자들은 “내가 사먹는 가격은 그대로”라며 한우 도매가 하락을 실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우 도·소매가의 ‘괴리’를 해결할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한우 도매가 하락…한우 농가 ‘비명’


1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6일 기준 한우 지육(도축한 고기) 1kg 도매가격은 1만3876원으로 작년 같은 시기(2021년 12월 27일 1만7746원)보다 21.8% 떨어졌다.

한우 가격이 급락한 이유 중 하나로는 한우 사육량 증가가 꼽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일 발간한 ‘최근 한우 가격 하락 원인과 전망’에 따르면 한우 사육 마릿수는 2014년 이후 매년 증가해 2022년 355만7000마리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한우 가격 강세가 이어지면서 한우를 키우려는 농가가 많아지다 보니 사육 마릿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공급은 늘었지만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소비는 줄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식료품·비주류 음료 물가는 1년 전보다 7.9% 상승해 소비자물가 상승률(5.9%)을 넘어섰다. 높은 물가를 견디지 못한 가정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고 한우는 소비 감소 항목이 됐다. 2022년 1∼9월 가정 내 한우 소비량은 12.0kg으로 1년 전보다 6.1% 감소했다. 공급은 늘고 소비는 줄면서 한우 재고량이 1년 전보다 83.3% 증가한 상태다.

여기에 원가까지 오르자 한우 농가에서는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라 국제 곡물가격이 올라가면서 배합사료 가격이 2021년 10월 kg당 483원에서 1년 만에 613원으로 26.9% 상승한 것이다.

전국한우협회는 지난해 12월 23일 입장문을 통해 “‘소가 소를 먹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처 출하 월령에 도달하지 못한 소까지 팔아 치운 돈으로 사료 값을 치르는 상황”이라며 “생산비도 못 건지는 소 값에 허덕이는 농가와 밀린 사료 값에 쓰러져 도산하는 농가가 줄줄이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 도매가 하락해도 소비자가는 ‘제자리’

도매가는 급락했지만 마트에 진열된 한우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 한우 등심(1등급) 도매가격은 kg당 5만4596원으로 1년 전(6만3867원)에 비해 14.5% 내려갔으나 소비자가격은 같은 기간 7.0% 하락하는 데 그쳤다. 전국한우협회는 정부에 도매가와 소매가를 강제로 연동시키는 ‘도매가격 연동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도·소매가의 괴리를 두고 유통마진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통구조 문제를 최근 사태의 핵심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한우는 도축, 가공, 납품의 3단계로 이뤄진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다른 품목과 비교해 특별하게 복잡한 유통구조를 가졌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해외와 비교해도 육우의 유통비용률(소비자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 48.1%. 일본 46.79%(2020년 기준), 미국 63.19%(2021년 기준) 수준으로 한국이 높은 편이 아니다. ‘2021년 축산물유통정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축종별 유통비용률 역시 닭고기(57.1%), 돼지고기(48.7%), 소고기(48.1%)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한우 소매시장 가격의 ‘하방 경직성’에 주목한다. 특히 고급화 전략을 주로 사용하는 구이용 소고기는 하방 경직성이 더 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프라다, 샤넬 등 ‘명품화’ 전략을 구사하는 제품들은 가격을 올릴수록 오히려 사치품 수요를 충족시켜 준다”며 “한우 소고기도 이 같은 고급화 전략을 주로 사용해왔기 때문에, 판매자들이 도매가격에 민감하게 가격을 낮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가격전략에는 정부가 개입하기 쉽지 않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가 프라다, 샤넬에 ‘원가에 맞게 가격을 내려라’라고 하기 힘든 것처럼 한우 판매업자에게도 도매가에 소매가를 연동하도록 강제할 논리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소매가가 통상 1개월의 시차를 두고 도매가를 쫓아가는 경향이 있어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2년 한우 가격이 급락했을 당시에도 한우 등심 부분육(1등급) kg당 도매가격은 3월 13일(5만2248원)을 고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2013년 4월 12일 저점인 3만4778원까지 33.4% 하락했다. 한우 등심 부분육(1등급) kg당 소비자가격은 도매가 고점 형성 후 6개월이나 지난 2012년 9월 26일(6만7933원)에 고점을 형성해 2013년 4월 23일(5만3206원)까지 21.7% 하락했다.

○ 정부, 과도한 공급 줄이고 소비 촉진


우선 정부는 유통구조에 손을 대기보다는 과도한 공급을 줄이고 위축된 소비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농협은 지난해 8월부터 ‘제2차 한우 암소 비육지원 사업’을 통해 한우자조금 비육지원사업 4만 마리와 자율감축사업 2만 마리, 총 6만 마리 규모의 감축 신청을 접수했다. 암소를 번식에 활용하지 않고 도축하는 농가에 인센티브를 지급해 수급조절을 하겠다는 취지다.

과거 2011∼2013년 한우 도매가가 급락했던 ‘한우 대란’ 시기에도 이 같은 대책을 추진한 바 있다. 정부는 당시 처음으로 ‘암소감축사업’을 도입해 300억 원가량을 들여 한우 10만 마리를 감축했다.

정부는 최근 수요 진작을 위한 할인 쿠폰 지원 등 대책도 내놓고 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는 2022년 12월 16일 온라인몰 3사(농협라이블리, SSG닷컴, 쿠팡)와 함께 한우 할인판매 행사에 나섰다. 업체들이 한우 할인 행사를 열면 한우자조금위원회가 1등급 한우고기는 10% 추가, 2등급 한우고기는 20% 추가 할인쿠폰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형우 농촌경제연구원 축산관측팀장은 “설 이후 한우가 비수기에 접어드는 만큼 정부는 소비촉진행사를 늘리는 등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한우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2011년 당시처럼 한우 마릿수를 한꺼번에 감축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국내에서 소비되지 않는 물량을 해외로 돌려 수출 창구를 다변화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현재 한우는 홍콩에만 수출이 되고 있지만, 한류 흐름을 이용해 동남아시아 쪽으로 수출 창구를 넓히는 전략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서영빈 경제부 기자 suhcrat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