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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의 대표는 대통령의 부하일까[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입력 | 2023-01-03 14:00:00


청와대와 여당, 야당을 모두 거쳤고 2023년 현재 국회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말 뒤에 가려진 진짜 속내와 의미를 찾아내고, 문제를 짚어보려 노력 중입니다.

지난해 11월 ASEAN 관련 정상회의 및 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환송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과거 청와대, 현재 용산 대통령실의 구성원들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 소속 정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더라도 공무원이 되는 순간 당원 자격을 내려놓고 탈당해야 한다.

다만 한 사람은 예외다. 바로 대통령이다. 정당법 제22조에는 당원 자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시해놓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현재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공무원 중 국민의힘 당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건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하다. 역대 대통령들도 당적을 유지한 채 청와대에 입성했었다.

문제는, 소속 정당을 대하는 대통령들의 모습이다. 정당의 수장은 당 대표다. 하지만 평(平)당원 신분인 현직 대통령은 집권 여당에 끊임 없는 관심을 보여 왔고, 당 대표를 뛰어 넘는 힘을 과시하려 들기도 했다.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총재를 맡았던 군사 정권 시절이 지난 뒤에도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여당을 향한 관심을 뛰어 넘어 아예 ‘새 집 짓기’에 직접 나섰다. 1997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당선됐던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의 창당을 주도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비화를 다룬 2003년 4월 17일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DB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1월 열린 새천년민주당 창당대회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힘을 보탰지만, 그해 4·13총선에서 집권 여당은 새천년민주당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에게 원내 제1당 자리를 내준다.

새천년민주당 소속 후보로 김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여당의 개편에 나선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또 새 집을 지은 것.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2월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까지 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헌정사 첫 탄핵을 겪게 된다.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기세등등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정 운영 실패로 열린우리당도 노무현 정부와 함께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결국 2007년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된다. 정권 재창출 역시 실패.

진보 정권의 두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창당을 주도했다면, 보수 정권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위 그룹이 전면에 나섰다.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의 등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총선 공천은 ‘친박 공천 대학살’로 불린다. 친이계의 주도로 친박 인사들이 무더기로 공천에서 탈락한 것. 그러나 친이계의 전성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4년 뒤인 2012년 공천에서는 친박계의 복수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친박의 기세는 더 등등해졌지만, 그 끝은 다르지 않았다. 2014년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는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서청원 의원을 밀었지만 패배하고 만다.

이쯤에서 멈췄어야 했지만, 친박계는 2016년 총선 공천에서 또 다시 실력 행사에 나선다. ‘진박(진짜 친박) 감별’과 ‘옥새 파동’이란 말로 회자되는 2016년 총선의 승자는 결국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었다.

2023년 새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똑같은 시도가 또 펼쳐질 분위기다. 그 첫 무대는 3월 8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18년 만의 규칙 개정에 나섰다. 일반 국민여론조사를 없애고 ‘당원 투표 100%’로 고쳤고, 결선투표도 도입했다. 무조건 친윤(친윤석열) 진영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의도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유흥수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유 위원장이 이끄는 선관위는 컷오프(예비경선) 등 3·8 전당대회의 규칙을 정하게 된다. 뉴시스

당권 주자들의 관심 역시 오로지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 뿐이다. 그렇다보니 대통령 관저에서 누가, 몇 번이나 밥을 먹었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우리는 윤석열을 위해 존재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세밑에 만난 한 여권 인사는 “이런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엔 뭐가 펼쳐질지 뻔히 보이니 더 걱정”이라고 했다. 두 번째 무대인 2024년 총선에서는 ‘친윤 공천’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과거 청와대가 있던 시절, 정치권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 중에 ‘건강한 당청 관계’라는 말이 있었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합심하면서도, 잘못된 길을 갈 경우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권은 여당이 청와대 뜻대로 움직이는 ‘수직적 당청 관계’를 택했고,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과연 집권 2년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