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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토막난 지역화폐 예산… 곳곳 “발행규모-할인 축소”

입력 | 2023-01-03 03:00:00

소상공인-주민들 “지역 경제 위축
고물가시대 역행하는 정책” 반발
정부 “특정지역에만 혜택 곤란
저소득-취약계층 더 지원해야”




국회가 올해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지난해보다 50% 삭감된 3525억 원으로 편성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 등 지자체 상당수는 새해부터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줄이거나 할인율을 축소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올해 예산안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던 정부는 “지역화폐 예산은 특정 지역 주민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만큼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더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상공인들과 주민들은 “지역 경제를 위축시키고 고물가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지역화폐 축소에 주민 등 반발

대전은 지역화폐 ‘온통대전’의 5% 캐시백(할인) 혜택을 1일부터 중단했다. 올해 정부가 대전에 배정할 지역화폐 지원 예산이 지난해(488억 원)보다 258억 원 삭감된 230억 원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돼 발행 규모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미 보유 중인 충전금과 캐시백 등은 올해도 사용이 가능하지만, 올해 대전시가 편성한 운영 예산이 30억 원에 불과해 온통대전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구도 지역화폐 ‘행복페이’ 발행 규모와 할인율을 축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소상공인과 시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대전 중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65)는 “지역 화폐가 도입된 뒤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 ‘온통대전’ 카드를 사용하는 고객이 확실히 늘었고, 카드 수수료 부담도 줄어 큰 도움이 됐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한 상황에서 매출이 줄어들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전 시민 류모 씨(54)도 “서민이 직접 몸으로 느끼는 좋은 정책을 새해부터 없애는 게 맞느냐”며 “고물가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했다.
○ 발행 규모 늘리는 대신 할인율 줄이기도
일부 지자체들은 주민 반발을 고려해 발행 규모와 할인율 중 하나를 줄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서울은 서울사랑상품권의 할인율(10%)은 유지하되 발행 규모를 지난해(8417억 원)보다 2687억 원 줄인 5730억 원으로 잡았다. 당초 국비 지원이 없을 것으로 보고 할인율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국비 지원이 되살아나면서 할인율은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제주 역시 지역화폐 ‘탐나는전’의 발행 규모(3000억 원)를 지난해보다 1000억 원 축소하는 대신 할인율(5∼10%)은 유지할 방침이다. 광주는 ‘광주상생카드’의 발행 규모를 855억 원으로 유지하되 할인율을 10%에서 7%로 축소한다. 다만 설날과 추석이 있는 1월과 9월에만 10%를 할인한다. 강원 강릉, 춘천, 원주, 고성 등도 할인율을 10%에서 5∼6%로 줄였다.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늘리는 지자체들도 할인율은 줄일 방침이다. 세종은 발행 규모를 10%가량 늘리는 대신 할인 혜택을 10%에서 5%로 낮추기로 했다. 전북도 지역화폐를 지난해보다 80억 원 더 발행하는 대신 할인율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지역화폐는 효과가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사업으로 온전히 그 지역의 사업”이라며 “지역 상권과 소비가 어느 정도 살아나는 상황에서 그쪽에 대규모 재원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데 정부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라며 지역화폐 예산 축소의 배경을 설명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