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국경을 넘어 딸을 찾아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러시아군에 납치된 13세 딸을 찾아오기 위해 11일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딸과 상봉한 우크라이나 모녀의 사연을 영국 더타임스가 2일(현지 시간)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주 쿠피안스크 인근의 작은 마을에 사는 류드밀라 코지르 씨(49·여)는 지난해 여름 러시아군에 딸 베로니카를 뺏겼다. 당시 쿠피안스크 일대를 점령한 러시아군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러시아 내 안전지대로 이동시키겠다”며 공립학교 학생들을 러시아 영토로 데려갔다. 이 과정을 ‘여름 캠프’라고도 주장했다.
마을 주변을 벗어나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시골 주민들에게 직접 포탄이 쏟아지는 국경을 넘어 아이들을 찾아가라는 러시아군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인근 대도시인 하르키우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자식을 되찾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꺾을 순 없었다. 마침 ‘세이브 우크라이나’라는 비정부기구(NGO)가 여권 발급 등 절차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코지르 씨를 포함한 부모 14명이 용기를 냈다.
이들은 여권을 만든 후 폴란드, 벨라루스를 거쳐 러시아로 들어갔다.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이 버스만 11일을 타야 하는 고된 여정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성탄절 직전에 베로니카를 포함한 총 21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었다.
코지르 씨는 “캠프 입구에서 베로니카를 기다릴 때 혹여 ‘여기에 아이들이 없다’고 말할까봐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엄마를 상봉한 베로니카 역시 “엄마와 아빠, 오빠까지 너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후 러시아가 강제로 데려간 우크라이나 미성년자는 1만3613명이다. 이 중 불과 122명만 집으로 돌아왔고 나머지는 행방불명 상태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대부분이 러시아 가정에 입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인구를 고의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 이같은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