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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정부 보조금 중독

입력 | 2023-01-04 03:00:00

시민보다 정부 지원 의존하는 NGO
권력 편승 ‘곤고(GONGO)’ 변질 우려



박용 부국장


2010년 비정부기구(NGO) 취재를 하려고 일본을 방문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한국 칭찬’을 들었다. 고베(神戶)시의 한 비영리단체(NPO) 관계자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나 은퇴자들이어서 속도를 내서 일하기 어렵다”며 “젊은 상근활동가가 많은 한국 단체들의 추진력이 부럽다”고 말했다.

곱씹어 볼수록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소수 상근활동가가 주도하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성과를 빨리 낸다고 해서 더디더라도 시민의 힘으로 가는 일본보다 더 낫다고 할 순 없다. 시민의 지지와 후원이 없으면 결국 동력이 떨어지고 감시 대상인 정부나 기업에 손을 벌려야 한다.

10여 년이 흘러 일본인의 어색한 ‘한국 칭찬’이 떠오른 건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다. 한국의 간판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회원 수는 2010년 1만2000여 명에서 11년간 1000여 명이 늘었다. 거긴 그나마 낫다. 시민 참여가 저조한 곳은 정부 의존이 커진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지난 7년간 비영리 민간단체에 정부 보조금 31조4000억 원이 들어갔다. 목적과 달리 세금을 유용한 곳도 드러났다. NGO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지나치면 독립성이 훼손된다. 1980년대 이후 국제사회에선 정부 지원을 받고 친정부 활동을 하는 무늬만 비정부기구를 ‘곤고(GONGO·Government Organized NGO)’라고 부르며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정부나 기업 후원을 받지 않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다. 국제 의료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는 각국 정부의 지원을 전체 재원의 20% 미만으로 제한한다. 멸종위기 동물 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계자연기금(WWF)의 재원 중 정부 보조금은 10% 미만이다.

한국에서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회비와 후원을 주된 재원으로 할 때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다’며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여연대도 ‘불필요한 논란의 소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1998년 이후 정부로부터 그 어떠한 재정 지원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의 보조금 관리 강화 방침에 대해서는 “국고보조금을 지렛대 삼은 시민사회 ‘좌우 갈라치기’”라며 반발했다. 나랏돈 무서운 걸 잘 알면서도 정치적 해석으로 앞뒤 안 맞는 성명을 내놓았다.

NGO가 시민보다 정부에 의존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라치기 논란’은 되풀이된다. 시민 참여 확대 해법 역시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가 내놔야 한다. 시민단체들이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사회 문제부터 기업 지배구조까지 수많은 논평과 성명을 내놓지만, 시민들은 누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이런 내용을 내놓는지 잘 모른다.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이해관계자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물이 개입해도 알 수 없다. 직업적 상근활동가들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국회로 향하거나 감시 대상인 권력기관, 공공기관에 입성하면 시민들은 시민운동이 사유화, 권력화, 정치화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회원은 몇 명이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 어디에 쓰는지도 제대로 알리지 않는 ‘깜깜이 단체’도 많다. 그러면 시민들이 참여하기 어렵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소개한 것처럼 무늬만 NGO를 가려내기 위해 금융시장의 민간 신용평가사처럼 단체들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독립적인 ‘NGO평가기관’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단체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시민의 지지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