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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압박에 문 닫게 해달라는 대학 많아… 매몰 비용 엄청날 것”

입력 | 2023-01-04 03:00:00

홍원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



홍원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은 지난해 12월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규제와 재정난으로 대학이 하향평준화했다”며 “대학 경쟁력 없이 국가 경쟁력이 있을 수 있나”라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대학의 위기.’ 더 이상 수사어가 아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내 대학교육 경쟁력 순위는 46위로 하락했다. 평가 대상 국가(63개국) 중 하위권이다. 대학이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압박과 교실 크기까지 정해주는 정부 규제로 경쟁력을 잃고 표류하는 사이 학령인구 감소라는 파도가 덮쳐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만난 홍원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경북대 총장)은 “국회서 고등교육 지원을 호소하면서 부끄럽지만 눈물이 났다. 대학 총장을 맡고 나서 울분이 북받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적 자원밖에 없는 나라에서 언제까지 대학을 ‘공공의 적’으로만 대할 건가”라고 했다.》

―정부는 올해 신설되는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를 통해 9조7400억 원을 대학에 투입하기로 했다.

“대학은 정말, 정말 아사(餓死) 직전이다. 수액을 맞는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원래 고등교육 예산(7조7000억 원)에다 국세로부터 1조7000억 원을 가져왔다. 고등교육 재정의 마중물이 마련된 것이다. 기존 예산은 국립대 운영비, 연구개발 지원비 등 재정이 투입될 곳이 일일이 정해져 있다. 대학 마음대로 1원도 쓸 수 없단 얘기다. 이번에 추가된 1조7000억 원은 대학이 혁신사업에 자율적으로 쓰도록 설계됐다. 이 점이 중요하다.”

―‘아우 돈 뺏어서 형님 먹여 살린다’며 교육감들이 반발했다.

“이번에 확보한 고등교육 재정은 내국세의 20.79%에 연동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아니다. 논란이 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감히 손 댈 생각도 못 했다. 국세인 교육세로 충당한 것이다. 지난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65조 원이고 올해 77조 원이 걷힌다고 한다. 이미 교육청 통장에 19조 원이 쌓여 있다. 반면, 대학은 적금은커녕 매년 적자가 난다. 요즘 초중고교 중에 재래식 변기 있는 곳 본 적 있나. 대학은 수두룩하다. 화장실 가려고 집에 다녀오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이 대학 실험실 보고 중·고교보다 열악하다고 한다.”

―교육청이 통장에 돈을 쌓아 두면서도 대학에 줄 수 없다는 건가.

“교육감들은 미래를 대비해 아껴 둔 돈이라고 한다. 실상은 다르다. 초중고교 시설 개선을 한다고 치자. 예산이 있어도 1년 안에 수백 곳을 공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교육청 공무원이 관리·감독을 나가야 하는데 그만한 인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노트북을 척척 사 주고, 코로나 지원금을 나눠 주며 예산을 쓴다. 남아도는 돈이라도 대학에 한 번 양보하면 계속 뺏기게 될까 봐 여지도 주지 않는다. 안정적인 수입을 뺏기기 싫은 것 아니겠나.”

―대학의 재정난이 얼마나 심각한가.


“초중고교 교육에는 1인당 연간 15만 달러, 대학 교육에는 연간 11만 달러가 투입된다. 이런데도 초중고교와 대학 교육에 칸막이를 높게 치고 재정을 배분하는 게 합리적인가. 2009년 이후 등록금이 동결됐다. 14년 동안 교수 월급은 거의 동결됐고 인건비가 싼 강사 수업이 늘었다. 대학마다 도서관 도서구입비부터 줄였다. 대학 교육의 질이 낮아지는 게 당연하다.”

―교육부 규제가 얼마나 세기에 대학이 문을 닫을 상황에도 등록금을 올릴 수 없다는 건가.

“국가장학금이 4조 원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3조6000억 원(유형1 장학금)이 간다. 나머지 4000억 원(유형2 장학금)이 지역인재 또는 대학이 선발한 학생에게 간다. 경북대의 경우, 자체적인 기준으로 장학금을 줄 수 있는 금액이 16억 원 정도 된다. 사실 16억 원이야 등록금 10만 원만 올려도 해결된다. 그런데 정부 지침을 어기면 교육부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한계대학으로 퇴출시키거나 학자금 대출이 안 되는 대학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등록금도 학생들이 와야 올리는데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대학이 철저히 순응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대학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학과 신설과 정원 조정을 대학 자율에 맡겨 기업 인수합병처럼 대학 간, 단과대 간 통폐합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앞서 ‘대학규제개혁국’을 신설하는 조직개편안도 발표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는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공무원이 바뀌지 않는 한 도루묵이다. 관행대로 안전하게 일하려는 관성을 쉽게 바꾸기 힘들다. 반도체 학과 신설한다고 요란한데 규제만 없었어도 진즉 설치할 수 있었다. 반도체 인력은 학과를 만든다고 인력 양성이 뚝딱 되는 게 아니다. 팹시설(Fablab), 클린룸 같은 시설이 있어야 하고 전문성 있는 교수도 필요하다. 다 돈이 든단 얘기다. 그런데 등록금을 올릴 수도 없고, 재정 지원도 초중고교보다 못하다. 반도체 인력 삼성은 2억 원, 구글·아마존은 4억 원 주고 데려간다. 경북대 조교수로 오면 5000만 원 받는다. 과거 애교심 애향심 애국심에 호소해서 고급 인력을 데려올 수 있었지만 요즘은 안 통한다.”

―등록금 자율화가 대학 위기의 해법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등록금 동결이 낳은 폐해는 대학의 하향평준화다. 교육부가 대학의 생명줄을 쥐고 교수 수와 월급, 교실 수와 크기 등을 통제한다. 모든 대학을 똑같이 묶어 놓는다. 경쟁력 있는 대학이 탄생하려면 우수한 교수도 모셔 오고, 고가 실험 장비도 들여놓고 이래야 한다. 그 과정에서 등록금이 오른다 하더라도, 내 미래를 위해 투자할 만하다고 판단하면 학생들이 입학한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하면 된다. 만약 학생이 ‘아니다’ 판단하면 해당 대학은 도태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옥석을 가리는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구조조정이 갑자기 진행될 거다. 폐교되면 인근 지역경제도 무너진다. 이제는 사회가 치를 비용이 너무 커졌다.”

―등록금 자율화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된 것 같다.

“내년 총선 앞두고 아직은 현실성이 없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도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회에 와서 등록금 자율화를 꺼냈다가 바로 철회했다. 부모들한테 표가 나오는데 누가 그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자고 하겠나. 결국 정치가 문제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42년이면 현재 대입 정원(47만 명)보다 대학 입학 가능 인구가 31만 명이나 부족하다.

“전국에 대학이 400여 곳인데 지금도 문 닫고 싶은 대학이 있다. 대교협에 ‘문 닫게 해주세요’라고 찾아온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사학재단의 땅은 국가에 환수된다. 그러니 학생 1명이라도 데려와 문을 닫지 않으려고 한다. 학생 충원율을 맞추려고 교직원 아내를 학생으로 등록하는 꼼수를 쓰더라. 3개월 다니고 휴학하고 등록금을 다시 받아 가는 식이다. 야당에선 대학을 20∼30년 운영하며 재정 지원을 받고 세금 혜택도 받았으니 당연히 환수해야 한다고 한다. 일리 있지만 현실을 보자. 부실 대학이 연명할수록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다. 대학에 퇴로를 만들어줘야 구조조정이 된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대 사정이 더 어렵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다. 거점국립대학을 서울대처럼 만들자는 거다. 서울대 학생 1명당 4800만 원, 연·고대 학생 1명당 2800만 원 투입한다. 경북대 부산대 등 거점대학이 1명당 2400만 원이다. 이 격차를 줄이려면 결국 지방대를 육성할 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2025년부터 대교협이 대학 평가를 담당한다. 평가 내용이 어떻게 바뀌나.

“교육부와 별개로 대교협이 5주기 평가를 해 왔다. 교육부 대학기본역량진단과 항목이 80% 정도 겹친다. 다만 대학 재정 지원과 연계하지 않는다. 교육부 평가에선 1점 차이로 재정을 끊어버리기도 하니까 대학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고 서류 작업에 불필요한 역량을 쏟게 된다. 통과와 탈락으로만 나누고, 탈락 그룹은 1년 유예기간을 두고 다시 본다. 일종의 컨설팅 개념이다. 앞으로 대학평가 지표 개발을 위한 TF 팀을 꾸려 연구를 할 예정이다. 지표는 교육의 질에 집중될 것이다.”


홍원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경북대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경북대 건설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대외협력처장, 산학연구처장 등을 지냈고 2020년부터 경북대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현재 26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