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시인이자 반전(反戰)운동가인 윌리엄 스태퍼드의 ‘아무 때나(Any Time)’는 그런 주제를 다룬 시다.
부모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이다호의 선밸리, 소투스로 여행을 간다. 그들의 눈앞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다. 아이들은 경치보다는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엄마가 아빠의 손을 잡은 모습이 더 흥미로운 모양이다. “수지네 엄마는 흰머리가 안 났어요.” 그 말에 낭만적인 분위기가 깨진다. 아이들은 아빠의 손을 잡고 있던 엄마에게 했던 말을 먼 훗날 나이가 들어서야 떠올리며 미안해할지 모른다. 그들도 때가 되면 엄마처럼 새치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 모를 뿐.
그들이 이번에는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가 가진 최고의 비밀 하나를 얘기해 주세요.”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나는 부서진 것들을 갖고 낙하산을 만들었단다. 나의 상처는 나의 방패야.” 낙하산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속도를 늦춰 안전하게 땅에 안착하게 해주는 장치다. 그런데 부서진 것들로 어떻게 낙하산을 만들까. 어느 누가 그렇지 않으랴만 아이들의 아빠도 살면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망가지지도 않았고 부서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아픈 상처들로 인해 더 강해지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부서진 것들로 낙하산을 만들었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아무 때나 어디로든 타고 내려갈 수 있는 낙하산이 되는 상처의 역설.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엄마에게 친구 엄마는 흰머리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철없는 아이들이 그러한 비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도 세상을 살다 보면 언젠가 그 말의 속뜻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이렇듯 뒤돌아봐야 가슴에 와닿는 것들이 있다. 낙하산의 비유처럼. 그리고 엄마의 새치처럼.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