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할까요? 새해 결심은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부족한 점을 고치고 채우겠다는 선언입니다. 또다시 찾아온 새해는 ‘패자 부활전’입니다. 반갑게 맞이할 일이니 새롭게 결심해야 하는 명분을 지키려 합니다. 매년 반복하지만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날 것임을. 한 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결심한다면 지키기 더 어려울 겁니다. 딱 세 가지 정도가 좋을 듯합니다.
우선, 시절이 어수선하고 나이도 들어가니 건강은 지켜야겠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사흘, 헬스클럽 운동 결심은 해보았자 앞이 뻔히 보입니다. 오늘 갈까? 내일도 되겠네! 미루기가 익숙해지면서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차라리 집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몸을 골고루 움직이겠다는 엉성한 계획이 현실적입니다. 설거지와 청소가 운동에 포함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모두 근육을 쓰는 일이고 따라오는 장점들도 있습니다. 경험에 의하면 설거지하는 시간에 창의적인 생각이 잘 떠오릅니다. 길어지면 깨달음도 얻습니다. 무릎을 대고 고개를 숙인 자세로 바닥을 닦으면 들뜬 마음이 진정되고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계단 오르기는 참을성을 길러주고 하체를 단련시킵니다. 둘째, 서류와 책 정리입니다.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셋째, 가족과 시간 더 보내기인데, 이 역시 병원 인턴 시절부터 오랜 세월 신용을 잃어서 전망이 밝지는 않습니다.
실행 가능한 결심은 소소할수록 유리합니다. 구체적이고 만만하니 별다른 계획이 필요 없습니다. 소소한 목표를 달성하면 자존감과 자신감도 높아지니 한 가지 일에서 두 가지 효과를 얻습니다. 거창한 결심이 쉽게 빨리 무너지는 이유는 목표가 너무 커서 실행 계획을 세세하게 세우기가 어려워서입니다. 소소한 성취는 훈련용으로 효과가 큽니다. 반면에 거창한 목표는 중도에 포기해도 경험한 바가 남아서 장차 도움이 됩니다.
담배 끊기, 체중 줄이기, 술 멀리하기 같은 목표만이 새해 결심할 대상은 아닙니다. 마음 챙김도 훌륭합니다. 업무에 덜 시달리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듣고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게 된다면 대단한 일을 이룬 겁니다.
새해를 맞이해 어떤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하시길 권고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해야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고민해 왔다면? 올해 그런 성향을 고친다면 삶의 수준과 행복 지표가 확 올라갈 겁니다. 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않을 권리도 찾아야 합니다.
무엇을 얻겠다는 삶만을 살아왔다면 올해는 무엇을 버리겠다는 결심도 해보시길 기대합니다. 물건이든 사람과의 관계이든 간에 정리할 시점을 놓치면 삶이 팍팍해집니다.
새해 결심은 반드시 이루어야만 할까요? 그냥 편안하게 생각하십시오. 연말에 가서 되돌아보니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은 기회였으며 결심을 지탱하는 자세를 익혔다고 판단한다면 올해를 우등으로 졸업한 겁니다.
결심한 바를 실행할 때 불안하거나 우울하면 방해를 받습니다. 힘써 극복해야 성취 확률이 높아집니다. 포기한다고 해서 감정 상태가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낙담과 실의로 이어진다면 마음고생이 더 심해집니다. 힘들어도 극복하려면 믿을 만한 상대를 찾아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힘들 때 하는 의논은 누구에게도 창피가 아닙니다.
새해 결심은 미완인 상태로 마무리를 지어도 아무 결심도 안 했던 것보다 백번 낫습니다. 겪으면서 배우고 깨닫는 것이 늘 있습니다. 새해 결심의 결과물을 단순히 성공 또는 실패로 나누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결과보다 오히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새해 결심의 가치는 ‘거짓 나’가 아닌 ‘참 나’를 찾는 주도적 삶을 살도록 하는 겁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사람을 기르는 겁니다. 올해 힘들어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새해는 매년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니 힘들어도 소신껏 살아보시길 기대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