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 라미레즈 前교수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힘 있어”
아이니사 라미레즈 전 예일대 재료과학부 교수는 “과학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과학 세계로 들어서는 입학허가증을 가졌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라미레즈 전 교수 홈페이지
“폴라로이드사는 60초 안에 흑인을 가둔다.”
1970년 10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폴라로이드사. 경영진이 드나드는 주차장과 출입문은 물론이고 회사 게시판과 화장실 곳곳에 이 같은 문구가 적힌 전단지가 나붙었다.
전단을 붙인 이는 폴라로이드 컬러사진연구소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 화학자 캐럴라인 헌터였다. 그는 며칠 전 회사 실험실에서 흑인을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아래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광부’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60초 안에 사진을 뽑아내는 신기술이 남아공에서는 흑인을 차별하는 ‘유색인종 통행증’을 만드는 데 쓰였던 것이다. 헌터는 전단지를 뿌리며 회사에 맞서다가 해고됐지만 7년간의 싸움 끝에 결국 폴라로이드사를 남아공에서 철수시켰다. 사진 기술의 진보가 흑인을 차별 속에 가두는 현실을 바꾼 것이다.
책에서 시계, 카메라, 전신 등 다양한 과학기술의 발명사를 조명한 그의 메시지는 “인간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인간을 만든다”는 것. 일례로 그는 1927년 미국의 발명가 워런 매리슨(1896∼1980)이 만든 전자식 ‘쿼츠 시계’가 불러온 변화에 주목했다. 신기술로 값싼 손목시계가 대량생산되자 일상의 순간이 시간과 분, 초 단위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손목시계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며 “요즘 더 빠르게 변하는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쉽게 예측조차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을 예로 들었다.
“인터넷 세상에서 잘못된 정보가 움직이는 속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학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힘도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여론을 모으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