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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얼굴 감춘 이기영… 신상공개 44명중 ‘최근 사진’은 1명뿐

입력 | 2023-01-05 03:00:00

피의자 신상공개 실효성 재논란




택시기사와 전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2)은 4일 오전 검찰에 송치되는 순간에도 마스크와 패딩에 달린 모자를 쓰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기영에게 마스크를 벗으라고 권유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경찰은 신상이 공개된 당사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공개용 사진(머그샷)을 촬영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경찰이 공개한 증명사진과 실제 모습 간 차이가 큰 경우가 많아 “범죄 피해를 예방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신상공개 제도의 취지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신상공개 44명 중 머그샷 공개는 1명뿐
이기영은 이날 오전 9시경 경기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넘겨지며 취재진에게 “살인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추가 피해자 여부에 대해선 “없다”고 했지만 얼굴을 공개하라는 요청엔 응하지 않았다. 이기영은 수사 과정에서도 “가족에게 범행 사실을 알리지 말라”며 신상공개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 의해 신상공개가 결정됐지만 이기영이 머그샷 촬영 및 공개에 동의하지 않아 경찰은 대신 운전면허증 사진을 공개했다. 그런데 현재의 모습과 지나치게 달라 논란이 됐다.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2010년 4월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 도입 후 지금까지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총 44명이다. 이 중 머그샷이 공개된 건 2021년 서울 송파구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뿐이다.

특정강력범죄처벌법과 성폭력범죄특례법에 따르면 △잔인성 및 중대 피해 여부 △충분한 증거 △공공의 이익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에 한해 피의자의 얼굴 이름 나이 등 신상이 공개된다. 다만 어떤 사진을 공개해야 하는지 명확한 규정은 없다.

신상공개 제도 도입 후 2019년까진 증명사진 외에도 검찰 송치 단계에서 얼굴이 공개되는 경우가 많아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2019년 전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이때 경찰이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등에 머그샷 공개 가능 여부를 질의한 결과 ‘머그샷을 공개하려면 피의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이기영이 지금과 확연하게 다른 운전면허증 사진만 공개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실효성 위해 공개” vs “피의자 인권 침해”
전문가 사이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신상공개 제도의 취지와 실효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머그샷을 촬영해 공개해야 한다”며 “피의자 인권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으면 일반 시민의 법 감정과 멀어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신 사진이 공개되는 성범죄자 신상공개와 형평성이 안 맞는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머그샷을 공개하면 범죄자라는 인상을 심어줘 피의자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성범죄자의 경우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난 후에 공개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해외에서도 머그샷 공개에 대한 일률적 기준은 없다. 다만 미국, 일본 등 비교적 신상공개에 적극적인 나라들은 강력범죄 피의자의 최근 모습을 담은 머그샷을 공개한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미국은 피의자 동의가 없더라도 경찰이 머그샷을 촬영해 공개한다”며 “신상공개 대상을 엄격하게 선별하되, 일단 신상공개가 결정되면 피의자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경찰이 머그샷을 촬영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