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6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인근 신행정수도 내 상업지구의 건설 현장 모습. 완공되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오벨리스크 모양의 ‘아이코닉 타워’(오른쪽에서 두 번째) 상층부에서 크레인이 돌아가고 있다.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됐고 중국 건설사가 공사를 담당하는 이 일대에는 이집트에서 보기 힘든 마천루가 속속 들어설 예정이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올라가는 동안 우리 삶은 나아진 게 없다.”
지난해 12월 26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떨어진 신(新)행정수도 건설 현장을 찾았다. 흙바닥에 앉아 동료들과 점심으로 먹을 옥수수를 굽고 있던 한 일용직 노동자는 기자에게 “3년째 일하고 있지만 일당은 그대로”라며 “그동안 물가가 많이 올라 실질임금은 내려간 셈”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더 물어보려고 하자 그는 “이러다 경찰에 잡혀 간다”고 손사래를 치며 옥수수를 챙겨 급히 자리를 떴다.
그의 뒤로는 완공 후 높이 385m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오벨리스크 모양 ‘아이코닉 타워’를 비롯해 서구 대도시에서나 볼 법한 마천루가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흙 묻은 얼굴로 빵 같은 주전부리를 파는 어린이가 적지 않았다. 건설 자재를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쉼 없이 들어왔지만 이 아이들의 안전을 배려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우버 기사로 일하며 손님을 태우고 신행정수도 건설 현장을 종종 구경시켜 줬다는 30대 남성은 “이집트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같은 초현대 도시가 들어선다는 건 매우 설레는 일”이라면서도 “대폭 오른 물가와 경제난으로 많은 이가 시름하는 모습과는 대비된다”고 했다.
시진핑에 “수도 건설 끝까지 부탁”
2015년 시작된 신행정수도 프로젝트는 이집트 ‘건국 이후 최대 국책사업’으로 꼽힌다. 총면적 700km²에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 공공기관 건물을 비롯해 거대 상업단지와 600만 명이 거주하는 주택단지가 들어선다. 미국 국방부 펜타곤을 본뜬 세계에서 가장 큰 국방부 청사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스타디움도 한창 공사 중이다. 사실상 서울(면적 605km²)보다 큰 도시를 통째로 건설하는 것이다.이 프로젝트는 중국의 막대한 자금력 덕분에 실행이 가능했다. 중국은 아이코닉 타워가 들어서는 상업지구 건설에만 150억 달러(약 19조1600억 원)를 차관 형식으로 제공하는 대신 국영기업 중국건축공정공사(CSCEC)를 시공사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날 신행정수도 건설 현장 출입구에서부터 상업지구로 이어지는 왕복 10차로 도로변에는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얼굴 포스터와 함께 곳곳에 CSCEC라고 적힌 대형 광고판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잇달아 구제금융을 받는 등 경제난에 빠져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가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신행정수도 프로젝트 투자를 계속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 이후 이집트 당국은 “신행정수도 프로젝트에 대한 중국의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집트 정부로서는 중국 정부의 ‘약속 재확인’이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도 “신행정수도 상업지구 건설을 포함한 여러 이집트 개발 분야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차원의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화답했다.
중국, 이집트 투자 지속할까
이집트는 UAE, 사우디에 이은 3대 채권국 중국에 지난해 7월 기준 78억 달러(약 9조9528억 원) 채무를 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 위안화 채권 형태로 5억 달러(약 6380억 원) 추가 대출을 약속받기도 했다.
다만 중국의 대(對)이집트 투자가 중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동 전문 매체 알모니터는 “신행정수도에 대한 중국의 투자 약속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놓인 이집트의 중국 채권 만기가 다가오며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극심한 경제난에 처한 이집트가 중국에 진 빚을 제때 갚지 못한다면 투자 약속이 지켜지겠느냐는 얘기다.
이집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친 최근 2, 3년간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6년, 2020년에 이어 지난해 말 IMF에서 30억 달러 지원을 약속받은 이집트는 아르헨티나에 이어 IMF에 가장 빚이 많은 나라가 된 지 오래다. 외신은 현재 1580억 달러(약 206조 원)인 이집트 외채 규모가 신행정수도 건설로 1조 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IMF 요구에 따라 지난해 말 이집트 파운드화 가치를 14% 절하한 여파로 서민들은 급격한 물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수에즈운하 中에 빼앗길라” 우려도
이집트에 더 좋지 않은 소식은 중국 경제 상황 또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 ‘아프리카 부채 고통에 대한 대응과 중국 역할’에서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채권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따라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에 무분별하게 채권을 발행한 중국이 채권 만기일이 다가오면서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이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52개국 중 22개국이 채무 부실(debt distress)에 빠져 있으며 중국 역시 아프리카 신규 대출을 2016년 284억 달러(약 36조2400억 원)에서 2020년 19억 달러(약 2조4200억 원)로 대폭 줄였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폭증 등으로 경제 성장이 더 둔화할 경우 중국은 ‘해외 대출 허리띠’를 더욱 졸라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스리랑카나 파키스탄에서처럼 채권 상환을 미뤄주는 대가로 이집트 사회간접자본(SOC) 운영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이집트 내에서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집트 정부가 수에즈운하와 관련해 수조 원 규모의 기금 조성을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이후 운하 운영권을 중국 등 외국 투자가에게 매각하려는 구상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이집트 당국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