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
#1. 호모 사피엔스의 육체적 성장판에는 기한이 있지만, 문화적 인간인 호모 루덴스의 지적 성장판, 감성적 성장판에는 그런 것 따위 없나 보다. 지난해 우린 적잖은 나이에도 아직 그것이 닫히지 않은 아티스트 몇 명을 재확인했다. 나훈아는 판타지 게임 주인공 같은 뮤직비디오 연기로 파격했고, 조용필과 최백호는 공교롭게도 나란히 ‘찰나’라는 제목을 화두로 국내외의 젊은 케이팝 아티스트나 작곡가들과 협업해 컴백했다.
최근 만난 음악가 나윤선 씨는 “월드투어를 다녀도 비슷한 옷 세 벌만 가방에 넣어 다니고 머리 스타일도 바꾸지 않았다. 이번에 ‘다르게 살아보자’는 생각에 이미지에 변화를 줬더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음악적 도전도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플러그 제공
“제 멘토가 계신데,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 보며 평생 안 해본 세 가지를 적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자기 전까지 그중에 사소한 것 한 가지라도 이루려고 노력해 보라고…. 요즘 그 말이 머리를 울려요. 희윤 씨도 이참에 머리 한번 샛노랗게… 어때요?”
#4.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캐럴, 팝, 재즈를 부르던 1934년생 미국 팝가수 팻 분은 1997년,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광기를 폭발시켰다. ‘In a Metal Mood: No More Mr. Nice Guy’라는 앨범에서 민소매에 근육질 상체를 보여주며 주다스 프리스트, 메탈리카의 곡을 재해석한 것. 1949년생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2012년 앨범 ‘Wrecking Ball’에 격렬한 랩 메탈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를 참여시켰다.
#5. 음악성과 나이는 반비례할까, 정비례할까. 모르긴 몰라도 ‘정답!’ ‘별 상관없다’에 한 표! 2011년, 미국 리코딩 아카데미는 블루스 피아니스트 파인톱 퍼킨스에게 그래미 트로피를 수여했다. 퍼킨스의 나이, 97세였다. 그래미 최고령 수상자다. 퍼킨스의 아성에 도전한 이가 있으니 1926년생 토니 베넷. 팝 아이콘 레이디 가가와의 듀엣 앨범으로 지난해 그래미를 받았다. 95세였다.
#6. 별난 성장판 이야기는 예술계, 별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3년은 다 함께 귀를 좀 더 열어 보는 해로 삼으면 어떨까. 각종 음원 서비스, 유튜브 덕에 지구상 거의 모든 음악을 거의 공짜로 들어 볼 수 있는 지금은 바야흐로 ‘듣기’의 골든 에이지(황금시대)니까.
‘Ditto(나도 그럴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