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입이 작아서 피하고 싶고, 뿔이 달려서 골칫거리였던 물고기. 경남 남해 창선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때 갯바위 낚시는 재밌는 놀이였다. 어떤 날은 낚싯바늘을 툭툭 치는 느낌이 불길할 때가 있다. 미끼만 쏙쏙 뽑아 먹고 챔질을 해도 좀처럼 낚이지 않는다. 쥐치는 입이 낚싯바늘보다 작아 미끼를 톡톡 쪼듯이 뜯어 먹는 성가신 물고기다. 이럴 땐 자리를 옮기는 게 상책이다.
진해에서 유배 생활을 한 김려도 쥐치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낚시 미끼를 잘 물지만 입이 작아서 삼키지 못하고 옆에서 갉아먹는 것이 마치 쥐와 같다. 쥐치를 잡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쥐치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낚싯바늘을 녹두알 크기로 7, 8개 정도 만든다. 그리고 짧고 뾰족한 낚싯바늘에 보리밥 한 알씩을 끼우고, 긴 대나무 낚싯대 대신에 손낚시를 한다.” 김려가 저술한 우해이어보(1814년)에 적힌 내용이다. 서유구가 지은 난호어목지(1820년경)에는 “쥐치는 비려서 먹지 않고, 껍질로 화살대를 문질러 갈아내는 데 사용한다”고 했다.
소형 어선에 잡히는 쥐치도 반갑지 않은 물고기였다. 머리에 달린 뾰족한 가시가 그물에 걸려서 잘 빠지지 않고, 다른 물고기에게 상처를 입혀서 상품성을 떨어뜨린다. 요즘은 쥐치가 귀한 몸이 됐지만 1980년대에는 처치 곤란할 정도로 흔했다. 우리 바다에 서식하는 10여 종의 쥐치류 중에서 쥐치, 말쥐치, 객주리가 주를 이룬다. 표준명 객주리와 제주도에서 객주리라고 부르는 물고기는 다른 쥐치다. 제주도에서 객주리는 말쥐치의 방언이고, 실제 객주리라는 쥐치 어종은 따로 있다. 연근해 어업으로 잡은 말쥐치는 연간 20만 t을 웃돌며 어획 순위 2위였던 멸치를 훌쩍 앞섰다. 1970년대 말부터 삼천포에서 대량으로 쥐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말쥐치가 인기를 얻었다. 그 많던 말쥐치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지금도 제주 남쪽 바다에서 잡히지만, 과거 어획량에 비할 바는 아니다.
쥐포의 원료인 말쥐치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춤에 따라 삼천포는 활기를 잃어갔다. 지금은 수입한 쥐포가 시장을 점유했다. 일부는 베트남 등지에서 들여온 원재료를 가공해 판매하기도 한다. 예전 맛을 찾는 사람들은 소량 생산되는 국내산 쥐포를 선호하지만, 가격은 훨씬 비싸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날에는 부뚜막 앞에 앉아서 장작불에 구워 먹던 두툼한 쥐포가 그리워진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