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은 씨는 여성 달리기 동호회 ‘필 레이디’ 회원들과 거의 매일 저녁 함께 달린다. 다소 나태했던 삶을 바꾸기 위해 2017년 운동을 시작한 그는 이젠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달리기 마니아가 됐다. 김보은 씨 제공
양종구 기자
회사원 김보은 씨(35)에게 2017년은 인생의 큰 변곡점이었다. 집안의 큰일을 겪은 것을 계기로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회사도 옮겼고 가족과 떨어져 독립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시작이 운동이었다. 지금은 하루라도 안 달리면 안 되는 달리기 마니아가 됐다.
“좀 나태하게 살았다는 생각에 요가학원에 등록했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몸이 달라지니 삶도 즐겁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죠. 2018년 시작한 달리기는 제 인생의 활력소가 됐습니다.”
2018년 가을 동아오츠카 선정 ‘포카리스웨트 러닝크루’에 이름을 올린 게 달리기의 시작이었다. “처음 달릴 때 힘들었지만 달리고 난 뒤 찾아오는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김 씨는 “20세 때 신발장에 운동화가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운동화가 쌓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9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에 데뷔했다. 4시간 30분. 그해 동아일보 공주마라톤에서 하프코스,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에서 다시 풀코스에 도전해 3시간 57분으로 ‘서브 포’를 했다. 김 씨는 2019년 동아마라톤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에서 포카리스웨트 영러너 어워즈를 수상했다.
3월 5일 열리는 도쿄 마라톤에서 ‘330’(3시간 30분 이내 완주)하는 게 목표다.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 마라톤 출전 가능 기록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보스턴 마라톤 출전 가능 나이대별 기록이 여자 만 35세의 경우 3시간 35분 이내지만 그보다 더 단축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김 씨는 지난해 가을 3시간 45분을 찍고 바로 3시간 38분까지 당기는 등 달리기만 하면 개인 최고 기록을 바꾸고 있어 330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그냥 달리는 것도 좋지만 목표를 세우고 대회에 출전해 기록을 줄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회 출전 목표는 늘 개인 최고 기록 경신”이라고 말했다.
2019년 여성 달리기 동호회 ‘필 레이디’에 가입한 김 씨는 주로 회사를 마친 뒤 저녁에 달린다. 새벽엔 모이기 어려운데 저녁엔 대부분 다 모일 수 있어 좋단다. 거의 매일 5∼8km를 달리고 10km를 넘게 달릴 때도 있다. 한강공원, 남산, 연세대 신촌캠퍼스 운동장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달린다.
“서울 한강을 달리며 한강다리를 본 적이 있나요? 달과 야경의 불빛이 한강물에 반사돼 비친 다리 모습이 환상적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달리는 게 큰 매력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치 않아요. 차를 타고 가면 못 보죠. 한강을 밤에 달리거나 걸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김 씨는 코로나19 탓에 여럿이 모이지 못할 때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입문했다. 2021년 영남알프스 나인피크 105km도 35시간에 완주했고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45km도 돌았다. 자연과 함께하는 산악마라톤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나무, 꽃, 바위, 개울 모든 게 정겨웠다.
“단순히 달리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 있게 달리려고 노력합니다. 목적이 있는 달리기라고 할 수 있죠. 달리며 건강도 챙기고 좋은 일도 하고….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