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새해 첫날, 새 양말을 신었다. 평소와 달리 알록달록한 패턴 양말을 골라두었다. 새 양말 하나 신었을 뿐인데 폴짝폴짝 걸음이 가벼워 자꾸만 걷고 싶었다. 365일이 오늘처럼 폴짝폴짝 즐거울 것 같아서 시작하는 마음이 알록달록 물들었다. 작은 의식 하나에 흡족해진 이런 마음이야말로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새해 복(福) 아닐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복은 어느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 그렇다면 인사말을 이렇게 고쳐 해야겠네, ‘새해에는 복을 많이 지으십시오!’”라던 법정 스님 말씀처럼 새해 첫날엔 나를 위한 복을 지어 왔다. 새 양말을 신어보는 작은 의식으로 새 마음을 다잡았다.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만의 새해맞이 의식이 있을까.
“베갯잇을 갈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 떡국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곤 대청소를 시작하죠. 이부자리를 가장 꼼꼼하게 신경 써요. 해묵은 이불을 빨고 부드러운 면 베갯잇으로 베개를 갈아줘요. 편안한 이부자리에서 깨끗한 베개를 베고 자면 365일 좋은 꿈을 꿀 것 같거든요.”
“새 달력을 펼쳐 기념일을 기록해요. 가족들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을 표시하거나 휴일을 세어보기도 해요. 보물찾기 전에 보물을 숨겨두는 사람처럼, 살아갈 365일 중에 기념할 날들을 작은 기쁨으로 미리 숨겨두는 거죠.”
“올해의 주제곡을 찾아 들어요. 새해 처음 듣는 노래 가사가 그해 운명을 결정짓는단 재밌는 얘기가 있죠. 몇 해째 김연자 노래 ‘아모르 파티’를 찾아 들었어요. 노래가 워낙 흥겨워서 파티하듯 즐겁게 살자는 의미인가 싶지만, 알고 보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이거든요. ‘인생은 지금이야’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면 어쩐지 씩씩해져요.”
저마다의 새해 복 짓기. 깨끗한 베개를 베고 꿈을 꾸는 사람, 소중한 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송하는 사람, 새 달력에 작은 기쁨을 미리 숨겨두는 사람, ‘아모르 파티’를 들으며 씩씩해지는 사람, 그리고 새 양말을 신고 폴짝폴짝 걸어보는 사람. 소소하지만 뿌듯하게 새해 복을 지은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래도 나는 새해엔 이 인사말이 좋다. 내가 지은 내 복도 행운처럼 나눠주고픈 마음을 담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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