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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이라도 하자[이재국의 우당탕탕]〈75〉

입력 | 2023-01-06 03:00:00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새해가 밝았다. 입버릇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올해 계획이 뭐냐고 물었다. 대부분이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돈 많이 버는 것?” “그냥 건강하게 별일 없이 사는 것?” 나이가 들수록 새해가 돼도 별 감흥이 없고, 계획도 안 세우게 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동그란 원에 한 시간 단위로 생활 계획표를 세워 가며 작은 결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아침 운동을 하고, 독서 시간을 지키고, 취침 시간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물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그걸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건 잘한 일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 금연을 하겠다, 술을 줄이겠다, 자격증을 따겠다, 영어 공부를 하겠다, 이런 장기적인 계획들을 세우며 지냈다.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지는 건 아니었지만 1년 동안 꾸준히 노력하겠다는 계획들. 그 계획 덕분에 나는 운전면허증도 땄고, 1년 동안 꾸준히 일본어 학원에 다니며 일본어 공부도 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 계획도 귀찮고, 결심도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나 스스로 알아서 잘하면 되지 뭘 계획을 세워! 그리고 내가 이 나이에 계획을 세운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고, 굳은 마음으로 결심을 해봤자 지켜지는 일이 드물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아무런 결심도 없이 새해를 맞이하기는 싫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올해는 어떤 계획을 세울까 고민하는 사이, 3일이 지났다.

2023년 나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결심을 해야 할까? 무언가 이루기 위한 결심이 힘들다면 헤어질 결심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못된 버릇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후진 마인드와 나를 후진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내 인생의 군더더기들. 이런 것들과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다.

먼저,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나쁜 버릇과 헤어지겠다. 그리고 1차 술자리가 끝나고 입가심으로 딱 한잔만 더 하자고 고집 피우던 내 후진 술버릇과도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있는 버릇과 헤어지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괜히 소파에서 10분 더 누워있고, 집에 들어가면 옷 갈아입기 전에 괜히 소파에 10분 누워있는 이런 습관과 과감하게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 얼마 전 친한 형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너도 이제 50 넘었지? 그럼 웬만하면 사람들이랑 싸우지 마라. 우리 나이에 싸우면 화해할 시간이 없어.” 그동안 일하면서 못 받은 돈이 많았다. 그 돈을 기억하고 있고, 그 돈 안 준 사람들을 계속 기억하고 만나면 싸워서라도 받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돈과 그 돈을 안 준 사람들과 강제로라도 헤어져야겠다. 상대는 줄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거기에 매달리고 있기에 내 인생이 너무 아까우니까. 그렇게 몇 가지 헤어질 결심을 더 하고 나니 오히려 내 목표가 선명해지고 내 계획이 심플해졌다. 역시 버려야 가벼워지고, 비워야 채워지는 것 같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