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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레지’-‘된장녀’… 커피로 본 젠더 불평등

입력 | 2023-01-06 03:00:00


1970년대 여성의 대표적 저임금 직업 중에 ‘다방 레지(레지스터)’가 있었다. 당시 영화에서 다방 레지는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여성의 표상으로 다뤄졌다. 다방과 커피, 여성이 하나로 이어지는 프레임이 만들어진 건 당시 ‘레지’를 통해서였다. 반면 다방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남성은 커피를 소비하는 지식인으로 표현됐다. 커피만큼 젠더와 밀접하게 관련된 사물도 드물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1861년 조선에 처음 전해져 일상 문화로 자리 잡은 커피를 통해 우리 사회 젠더와 인권 문제 등을 분석한 ‘한국의 커피 수용과 변천’(사진)을 지난해 12월 펴냈다. 공동 저자인 박건 동국대 인구와사회협동연구소 연구초빙 교수(사회학자)는 우리 사회에서 ‘커피의 젠더화’ 과정을 살폈다.

‘커피 심부름’은 여성 노동자가 처했던 차별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용어다. 국내에서도 1970년 인스턴트 커피 제품이 생산되기 시작됐고, 1979년 커피자판기가 등장했지만 여성은 커피 제조 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대학이 비서학과를 신설하고, 여군이 여성을 대상으로 ‘차 끓이기’ 교육을 시행한 것도 그러한 사회적 인식이 투영된 사례다. 여성 노동자를 결혼하면 곧 퇴사할 보조노동자로 바라보면서 직장 내 여성에게 붙은 ‘미스김’ 꼬리표는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커피전문점이 골목마다 있고, 1인당 매일 평균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오늘날에는 여성이 더 이상 ‘커피 타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로서도 커피를 마시는 여성에게는 ‘된장녀’라는 비하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박 교수는 분석한다. 남성은 커피 제조 전문가인 바리스타로 인식된다. 세계 바리스타 대회에서 우승한 남성 바리스타의 이름을 딴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점도 이러한 인식의 확산에 기여했다. 커피를 둘러싸고 여전히 불평등한 젠더적 이미지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커피는 중립적 액체로 보이지만 생산과 유통, 제조, 소비 과정에서 젠더 불평등의 양상이 겹쳐진다”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통시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상징물”이라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