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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든 김정은에 맞서려는 尹대통령에게…처칠이 주는 교훈 [한반도 가라사대]

입력 | 2023-01-06 14:00:00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께.

안녕하십니까.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외다. 요즘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을 향해 ‘할말은 하는’ 당신을 보면 90년 전의 내가 떠오릅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난 그의 침략성을 간파했소. 그리고 장차 독일과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지요. 1차 세계대전 이후 맹목적인 평화주의에 빠진 영국인들은 그런 나를 ‘전쟁광’ 이라고 욕했소.

나의 전임자 네빌 체임벌린이 1938년 히틀러를 만나 훗날 잘못된 유화정책의 대명사가 된 유명한 ‘뮌헨협정’을 체결했을 때에도 난 강력히 반대했소. 하지만 영국인들은 평화를 지킬 수 있게 됐다며 환호성을 질렀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김정은과 백두산에 올랐을 때 많은 한국인들이 박수를 쳤던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약소국 체코슬로바키아를 나치 독일에 바친 치욕적인 협정은 다음해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이후 휴지조각이 되었소. 2018년의 이른바 평양선언과 9·19군사합의도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는지요.

각설하고, 지금 한반도에 1939년처럼 진짜 전쟁이 난 것은 아니지만 철저한 군사적 대비를 강조하는 당신의 상황 인식은 올바른 것이외다. 김정은은 미국을 겨냥한 전략 핵미사일에 더해 대한민국과 일본을 공격할 전술 핵미사일 체제를 완성했다며 선제적 사용 가능성마저 공언하고 있는 판 아니오? 아직도 북한의 핵무장이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인 것이며, 협상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영국의 수상으로 세계 제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동아일보DB.


나는 누구보다 먼저 공산주의자들의 본질과 속성을 먼저 간파한 사람이요. 비록 이오지프 스탈린이 2차대전에서 나와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손잡고 독일과 일본 등을 물리치는 데 협조했지만 난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특성상 그와의 평화는 오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소. 1949년 3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타임-라이프 지’ 설립자인 헨리 루스와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지.

“공산주의자들과 논쟁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들을 전향시키거나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련 정부에 당신이 우월한 무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그 무력을 완전히 실질적으로 무자비하게 사용할 것이며 어떤 도덕적인 고려에 의해서도 억제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의 가장 큰 기회이고 평화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최근 당신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더군요. 지난해 12월 29일 대전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 군이란 있을 수 없다. 도발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현실주의 평화관’을 정확하게 피력한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대전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찾아가 연설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그런데 말이오, 전체주의 독재국가에 맞서 평화를 지키는 말처럼 쉬운 건 아니란 걸 당신도잘 알고 있을 거라 믿소. 무엇보다도 정부와 군대, 국민을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로 단결시키는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간지’를 갖추었다 한들 국가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 전쟁에서의 승리에 동원하는 영웅적 리더십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난 중요한 고비마다 공개 연설을 통해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공을 들였소.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정치권, 특히 당신을 비판하는 야당은 가장 중요한 설득 대상이요. 1940년 5월 13일 수상으로서의 첫 연설에서 나는 이렇게 호소했소.

“나는 의회에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나는 피와 노고, 눈물, 그리고 땀 외에 달리 내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가장 심각한 종류의 시련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어떤 비용을 치루더라도 승리하는 것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승리 없이 우리의 생존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연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소.

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수사학이 지도자의 필수적 덕목이라는 것을 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로마 공화정 말기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에게 배웠소. 그는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폭풍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배를 조타하는 것과 같다’고 했지요. 그만큼 정치지도자에게는 철저한 지식이 요구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도 9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소. 내 손으로 72권의 책을 썼다오.

로마 말기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의 상.


키케로는 진정한 지도자란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항상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소. 자신의 이익에는 국내정치적 인기도 포함될 것인데, 그야말로 그건 정말 덧없는 거외다. 나도 2차대전에서 승리한 직후인 1945년 7월 총선에서 영국 유권자들에게 비참하게 버림받았소. 사람들은 나에게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정치에서는 졌다’고 비아냥댔지. 하지만 난 낙담하지 않았소. 오히려 이후 기간을 ‘위장된 축복’이라 여기며 자서전을 쓰고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보냈소. 그 결과 1951년 다시 수상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소.

나의 삶을 돌아보면 핵을 든 북한에 대적하려는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덕목은 더 많이 있소. 신념과 비전(Faith and Vision), 공직자로서의 의무감(the Sense of Duty), 분별력(Prudence), 전략적 안목(the Strategic Mind), 외교술(Diplomatic Skill), 용기(Courage) 그리고 장엄함(Magnanimity)까지.

그중에 분별력은 미국이라는 가장 중요한 동맹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한국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이요. 내가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을 참전시키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것이요. 두 나라, 두 정상 사이에 아주 작은 오해도 없도록 세심하게 따져보고 치밀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난 당신의 전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절대 미국과 헤어지지 말라’는 고별연설 내용을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오.

▶‘오늘과 내일’ 칼럼 2017년 9월 18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70918/86372557/1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지만 개인적인 조언 하나로 마칠까 하오. 적과 대적하는 상황에서는 늘 맑은 정신을 유지하라는 것이오. 안보를 책임져야 하는 고독한 자리에 있지만 더 자주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를 권하오. 나는 혼자 그림 그리기를 즐겼소. 전쟁 중에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소. 평생 족히 500여 점 그린 듯하오. 그림을 그리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나와 대화를 했소.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올지,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한민국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 그럼 이만.
처칠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의 ‘윈스턴 S. 처칠-전쟁과 평화의 위대한 리더십(서울: 박영사, 2019)’를 인용 및 재구성 했습니다.
처칠의 생애에 대해서는 2018년부터 읽은 두 권의 원서를 참고했습니다. Martin Gilbert, Churchill: A Life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1991), Roy Jenkins, Churchill: A Biography (New York: A Plumbook, 2002).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