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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임수]“올해도 비둘기는 오지 않는다”

입력 | 2023-01-06 21:30:00


요즘 국내 주식 투자자 가운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의 이름과 성향까지 꿰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식당에서 “제임스 불러드는 강성 매파니 가려들어라”라는 대화가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매년 8차례 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하는데, 여기서 제롬 파월 의장 외에도 11명의 위원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결정에 따라 주식·외환시장이 요동치고 대출금리도 오르내린다.

▷지난해 3월부터 숨 가쁘게 금리를 올려온 연준이 속도 조절을 시사한 건 11월 말이다. 파월 의장이 “지나친 긴축은 피하고 싶다”, “금리 인상 속도를 낮추는 게 합리적” 등의 발언을 내놓자 시장에선 피벗(정책 방향 전환) 기대감이 커졌다. 연준이 금리 인상 폭을 축소한 12월에는 “인상이 거의 막바지”라는 전망도 나왔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대체로 연준이 올해 1분기까지 금리를 올린 뒤 2분기 인상을 멈추고 이후 금리를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FOMC 위원 12명 가운데 파월 의장을 비롯해 기준금리를 최대 7%까지 제시한 불러드 등 6명이 통화 긴축을 선호하는 매파로 분류된다. 절반은 중도파와 비둘기파로 꼽힌다. 취임 때만 해도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중립 성향이었던 파월 의장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거치면서 ‘인플레 파이터’로 변신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12월 FOMC 회의 의사록을 보면 올해 금리 인하가 적절하다고 본 비둘기파는 한 명도 없었다. 위원들은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로 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제약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12월 FOMC 의사록에는 인플레이션이 103번이나 언급된다. 연준은 41년 만에 최고로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작년 말 기준금리를 4.25∼4.50%까지 끌어올렸는데, FOMC 위원들이 예측한 올해 말 금리 수준은 5.0∼5.25%로 더 높다. 의사록은 “대중의 오해로 금융 여건이 부적절하게 완화되면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연준의 노력이 복잡해질 것”이라며 시장의 금리 완화 심리에 대한 은근한 경고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은 여전히 연준의 경고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도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극심한 경기 침체와 미국의 확고한 긴축 의지 사이에서 올해 첫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은이 정부에서는 독립했지만 연준으로부터는 독립하지 못했다”는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