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메카 떠오른 이슬람 성지
‘예언자의 모스크’에 모인 무슬림들
이슬람 성지의 관문 제다 항구
관광객 유혹하는 알발리드 구역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메카와 함께 이슬람 최대 성지인 메디나를 지난해 처음으로 비(非)무슬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개방했다. 메디나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예언자의 모스크’의 그린돔 아래에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다.
《이슬람의 최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 알라의 신전인 ‘카바’가 있는 메카는 무함마드가 태어난 곳이고, 메디나는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이 평생 꼭 한 번 성지순례를 하고 싶어 하는 곳. 그래서 메카와 메디나는 비(非)무슬림 외국인에게는 금단의 성역이었다. 그런데 ‘비전2030’을 통해 관광대국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메디나를 전격 개방했다. 사우디관광청의 초청으로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Prophet‘s Mosque)’에 다녀왔다.》 ○ 병자도, 가난한 이도 “평생의 꿈 이뤘다”
현대 사우디 왕가의 탄생지인 디리야 왕궁 도시.
지난해 12월 중순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제다에 있는 기차역에는 흰색 수건 같은 옷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남성들이 눈에 띄었다. ‘이흐람(Ihram)’이라고 불리는 순례자의 복장이다. 순례 기간에는 국적이나 지위 고하, 경제적 능력을 막론하고 똑같이 재봉선 없이 통천으로 된 두 쪽의 흰 옷을 입는다. 수영장에서 쓰는 큰 타월 하나로 상체를 가리고, 다른 하나로 하체를 가린 것처럼 보이는 복장이다. 메카, 메디나 성지로 향하는 사람은 비행기, 기차를 타기 전부터 화려한 옷을 벗고 모두 검소한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메카에서 천사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설법하던 무함마드는 서기 622년 지배층의 탄압을 피해 메카에서 북쪽으로 340km 떨어진 상업도시 메디나로 피신했다. ‘헤지라’(성스러운 도망)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이슬람력 원년으로 삼을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후 메디나는 ‘선지자의 도시’가 되었고, 무함마드와 후계자인 아부바크르, 우마르가 묻혀 있어 메카 참배 후 찾아오는 순례객들로 붐빈다. 무함마드의 무덤은 ‘예언자의 모스크’의 그린돔(Green Dome) 아래 내부에 있다. 수많은 첨탑이 서 있는 대리석 광장과 사원 안에는 전 세계에서 온 이슬람 신자들이 빼곡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몸이 불편해서 바닥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기도 하고, 백발이 된 노인이 이슬람 경전인 꾸란을 읽고 있었다. 인종과 피부색이 달라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간절한 바람으로 성지를 찾아와 기도하는 모습은 종교를 떠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은 평생에 한 번은 메카 성지를 순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들은 이슬람력 12월 7∼12일에 행해지는 ‘하지’(대순례) 또는 연중 수시로 하는 ‘움라’를 행하기 위해 메카와 메디나로 찾아온다. 사우디 정부는 중동을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에게 ‘하지 성지 순례 비자’를 발급하는데, 신청한 후 평균 37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그린돔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는 “이곳에 와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리석 바닥에 두꺼운 카펫이 깔린 모스크 안에서는 메카에서 가져온 물통에 든 ‘잠잠(Zamzam) 성수’를 마실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사막에 두고 떠난 후 하갈이 천사의 계시로 발견했다는 잠잠 우물에서 나온 성수다. 메카 성지순례에서 아브라함이 건립했다는 ‘카바 신전’과 ‘잠잠 우물’의 순례가 가장 중요한데, 메디나의 모스크에서도 잠잠 우물에서 가져온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예언자의 모스크’에 입장하기 전에 기자는 이슬람식 흰 모자와 두건을 샀다. 모스크 경내에서는 DSLR 카메라로 촬영할 경우 경비원이 제지했다. 그러나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것은 제지하지 않았고, 이슬람식 복장을 갖추니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중동 지역을 여행할 때는 관광객에게는 의무는 아니지만,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간단한 현지식 복장을 갖추는 것만으로 큰 호의를 얻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메디나에는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처음 왔을 때 지은 메디나에서 가장 오래된 ‘꾸바 모스크’도 남아 있다. 또한 무함마드가 메디나 주민들에게 환영의 선물로 받은 땅에 조성한 대추야자 농장(알리야 알마디나흐 팜)도 유명하다. ‘선지자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오아시스 지대인 만큼 펑펑 흘러나오는 지하수가 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사막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농장에는 대추야자 숲이 정글을 이루고 있는데, 알이 굵고 맛이 달짝지근한 대추야자를 맛보고 선물로 사가는 사람들도 많다.
사우디 정부는 현재 연인원 250만 명 규모인 하지 순례객을 2030년까지 500만 명으로 늘리기 위해 교통편과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2018년에 개통된 하라마인 고속철도는 메카∼제다∼메디나를 이어주는 453km 구간을 시속 300km의 속도로 운행한다. 메카의 관문인 제다 항구에 세워진 초현대식 철도역은 기하학적 아라베스크 문양의 외관이 눈길을 끈다.
○글로벌 문화가 융성한 제다 항구
홍해 연안의 제다는 사우디 최대의 항구도시다. 7세기부터 이슬람 최대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로 오는 순례객과 무역상들의 관문이기도 했다. 중세 시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은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향신료와 보석, 몰약, 포목 등 각종 특산품을 배에 싣고 왔다고 한다.
제다의 독특한 ‘히자즈 양식’ 로샨 베란다로 꾸며진 알타이바트 국제박물관.
제다 항구에 내린 순례객들은 ‘메카 문(Makkah Gate)’까지 동서로 길게 늘어선 전통시장인 수끄(Souq) 바닥에서 보따리를 풀었다. 시장 골목길은 바다를 건너온 진귀한 물품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지금도 제다의 주민들은 “모든 물건은 배에서 내렸을 때가 가장 싸다”는 말을 진리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다 항구 시장의 보석, 포목, 약재, 향신료 상가에는 지금도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몰려든다. 순례객들은 제다 항구에서 물건을 팔아 돈을 마련한 다음에 낙타를 타고 메카로 떠났다. 메카 문을 통과해서 낙타를 타고 1주일 정도 가면 메카에 도착한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순례객 덕분에 제다는 각국의 다양한 음식문화가 살아 있는 글로벌 도시가 됐다. 항구 주변의 알발리드(Al-Balid) 구역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자즈(Hijaz)’ 양식의 집들이 밀집돼 있다. 히자즈 양식은 파사드(전면부)가 화려하게 장식한 나무 베란다인 ‘로샨’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우디는 홍해 연안을 해양스포츠의 중심지로 만드는 ‘홍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제다는 미로와 무어의 작품이 있는 해변 조각공원, 홍해 크루즈, 해상 모스크와 아쿠아리움, 바다 뷰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쇼핑센터가 밀집돼 있다.
○사우디 여행 팁
사우디의 리야드와 제다는 지난해 9월부터 사우디아 항공 직항편이 개통됐다. 소요 시간은 12시간 40분, 왕복 항공료는 150만 원가량이다. 리야드, 제다, 알울라, 메디나 등 사우디 주요 도시를 여행하는 국내 여행사 패키지 상품은 400만∼600만 원으로 다양하다.
사우디만 일주(6박 7일)하는 경우도 있고 페트라, 두바이, 아부다비 등 인근 중동국가를 포함한 상품도 다양하다. 사우디는 금주 국가라 오후 11시에도 카페에서 남자들끼리 커피와 케이크를 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대신 치안이 안정돼 있어 휴일 밤에는 여성들도 오전 1∼2시까지 공원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사우디 전통차를 소개하는 리야드의 주부 샤다 씨.
외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하파와(Hafawa)’ 문화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아라비아커피와 대추야자를 대접하며 환대한다. 특히 “매일 밤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사우디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무척 반가워한다.
메디나,제다(사우디아라비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