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산업1부장
영국 작가이자 코미디언 도미닉 프리스비는 “인생 살면서 가장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이 바로 정부”라고 꼬집었다. 영국 텔레그래프 2016년 보도에 따르면 평균적인 중산층 전문직이 평생 내는 세금은 총 360만 파운드(약 55억 원)로 웬만한 집보다 비싸다.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면서 우리는 정부가 어떻게 돈값을 해야 하는지 따져 볼 생각을 못 한다.
천문학적 세금을 쓰면서도 호감을 받는 국가기관이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한국 우주항공청 설립에 대해 빌 넬슨 NASA 국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답으로 돌아온 첫마디가 바로 ‘민간’이었다고 한다. 민간을 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 정책에 참여시켜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돈값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대체로 폐쇄적이다. 정부가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예로 들겠다. 2021년 예약 폭증으로 질병관리청 백신 예약 시스템이 다운됐을 때다.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 IT기업 전문가 여러 명이 질병관리청으로 급파됐다. 하지만 극히 일부만 시스템 개선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민감 정보를 이유로 민간 접근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국은 2000개에 달하는 정부 웹 사이트를 ‘gov.uk’ 하나로 통합했다. 싱가포르는 모든 정부 기관의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는 ‘스마트 국가 플랫폼’을 만들었다. 한국 공공 시스템이 정부 조직과 업무마다 따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일반 국민이 접하는 서비스 중심으로 통합, 구성됐다. 예를 들어 소득세 신고, 주차료 납부를 할 때 우리는 국세청과 지자체 IT 시스템을 각각 찾아 들어가야 하지만 하나의 웹사이트(플랫폼)로 통합되면 하나의 창구에서 업무를 모두 처리할 수 있다.
한국 같은 시스템은 행정 사각지대를 만들기 쉽다. IT로 편의성을 높였다고 하지만 스스로 알아서 행정 서비스를 찾아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복지 예산 200조 원 시대에 굶어 죽는 이웃이 생기거나, 상속포기 제도가 있음에도 부모의 빚을 떠안는 어린이 채무자들이 생기는 것도 이런 시스템의 한계다. 민간 기업들은 고객 응대를 인공지능(AI)에 맡겨 통합하는 대신 남는 인력은 고객을 찾아가는 ‘푸시(push)형’ 서비스로 재배치하고 있다. 핀란드는 나아가 ‘넷플릭스형 정부’를 추구한다. 복지 관련 업무를 자주 찾는 사람에게 복지 정보를 앞서 추천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 인프라다. 국민 삶에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로 넷플릭스형 정부, NASA형 정부, 구글형 정부를 만드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대표 사업’이 되다 보니 오히려 관료들이 적극 참여하길 꺼리는 실정이라고 한다. 다음 정권에서 어찌 될지 몰라서란다. 정부 스스로 개혁하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파를 막론하고 정부가 돈값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프로젝트가 성공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