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사령탑 데뷔 무거운 관심 국민타자 잊고 초심 새 출발 규칙적인 운동으로 긍정 에너지 대화는 인지, 신체, 정서 기능 도움
한국 야구 레전드에서 프로야구 사령탑으로 변신 두산 이승엽 감독. 프로야구 감독은 스레스가 심한 직업이어서 그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이 감독은 운동과 대화로 풀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일반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팁이다. 주현희 스포츠동아 기자 teth1147@donga.com
스트레스는 익숙하지 못한 자극을 받았을 때 느끼는 긴장이나 압력을 말한다. 삶에 자극을 주거나 어려움을 헤쳐 나가도록 돕기도 하지만 오래 지속되면 피로, 불면증, 통증, 배변 장애,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이 생긴다.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면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면역체계의 노화를 가속화해 암이나 심혈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급격히 올라간다.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 감독은 대표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으로 꼽힌다. KBO리그는 정규시즌 144경기를 치르는 장기 레이스로 극심한 성적 부담에 노출된다. 1주일에 6경기를 소화해야 하기에 연일 쏟아지는 격전에 재충전도 쉽지 않다. 프로야구 감독 가운데는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경기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례도 있었다. 입맛을 잃고 식사를 못하거나 폭음 줄담배에 의지하기도 한다. ‘수십억 몸값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야구 대표로 출전해 한국의 금메달을 이끈 이승엽 두산 감독. 동아일보 DB
‘국민타자’로 이름을 날린 이승엽 프로야구 두산 감독(47)은 2023년 새해를 시작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올 시즌 지도자의 꽃이라는 프로 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어서다. 2017년 은퇴 후 야구장을 떠나 홀가분했던 지난 5년과 달리 벌써부터 고독한 승부사로 한 해를 시작하는 분위기다. 역대 프로야구 신인 감독 최고 대우인 3년 총액 18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5억 원)에 계약한 이 감독은 “새해를 맞아 생각할 일이 정말 많다. 내가 견뎌야 할 부분이다”고 말했다.
한국을 뛰어넘어 아시아 최고 타자였던 그는 코치 경험도 없고, 아무 연고도 없는 두산에서 지휘봉을 잡아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야구 레전드의 지도자 변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몰린다. 두산은 전통적인 인기 구단으로 열성 팬들도 많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다 지난해 10개 팀 가운데 9위에 처졌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두산이 받아든 최악의 성적표. 반전을 이끌어야 하기에 이 감독의 어깨는 무거워 보인다.
선수 시절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이승엽 두산 감독. 이 감독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롱런에 성공했다. 동아일보 DB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 이승엽 감독은 우선 운동을 해법으로 강조했다. 이 감독은 서울 서초구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1주일 3번 하루 1시간 이상 땀을 흘리고 있다. 웨이트트레이닝과 걷기 등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몸이 튼튼해야 자신뿐 아니라 팀원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은 스트레스에 따른 다양한 부작용을 막는 효과가 있다. 심리적으로 갇힌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인체의 큰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은 좌절감, 분노, 적개심, 울분 등의 감정을 떨쳐버리게 한다. 적절한 피로감을 느끼게 해 숙면을 이끈다.
다만 지나친 의무감으로 운동을 하다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역효과를 낼 수 있어 경계하는 게 좋다. 자신이 즐거워하고 몸이 견딜 수 있는 운동이 적합하다. 바르게 걷기, 조깅, 자전거타기, 수영, 가벼운 등산의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 추천된다. 1주일에 적어도 3~4회 중등도 이상의 운동을 생활화해야 한다. 평소 운동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한두 정거장 정도를 걷거나 계단을 이용하는 것도 권장된다.
삼성 선수 시절인 2017년 은퇴투어 당시 두산 김태룡 단장에게 백자 달항아리 선물을 받고 있는 이승엽. 항아리 겉면에는 이승엽의 좌우명인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두산 베어스 제공
이승엽 감독은 적극적인 소통에도 나서고 있다. “선수들이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을 털어놓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코칭스태프와도 많은 대화로 잘 풀어보려 한합니다.”
대화를 할 때는 일방통행보다는 탁구를 치듯 주고받아야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서로 경청하며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업무에서 벗어나 친구, 가족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면 건전한 휴식이 될 수 있다. 이 때도 대화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가족, 직장 동료들과 직접 대면하고 좋은 교류관계를 가지면 백신과도 같은 다량의 신경전달 물질을 방출한다고 한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 코치진에게 어떤 조언이라도 듣기도 위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고참 선수로서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기 위해 농담까지 자주 건네기도 했다. 어떤 조직이든 소통과 신뢰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이승엽 감독은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있다는 평가다.
두산 김태룡 단장은 “이승엽 감독은 최고 스타 출신인데도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먼저 다가가가 스타일이다. 자신을 낮춰가며 상대를 편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두산 박진환 홍보팀장 역시 “매우 젠틀하면서도 스마트한 느낌이다. 선수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모습도 인상적이다”고 전했다.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두산 양의지가 이승엽 감독의 축하를 받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세 아들을 둔 가장이기도 한 이승엽 감독은 새해 소망으로 가족 건강과 화목을 챙겼다. “가정이 평화로워야 제가 밖에서도 감독으로 팀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 모두 아프지 않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노인 복지시설에서 정기적으로 대화하는 노년층이 가볍게 운동하는 노년층보다 건강한 심혈관을 갖다다는 논문이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병원은 대화를 제대로 하지 않는 노년층의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대화가 인지, 신체, 정서기능에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2019년 김응룡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의 팔순연 행사에서 후배들을 대표해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는 이승엽 두산 감독. 두 사람은 삼성 시절 감독과 선수, 사장과 선수로 인연을 맺었다. 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com
이승엽 감독은 삼성 선수 시절 김응용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83)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삼성 감독을 거쳐 야구단 사장에 올랐다. 김 전 회장은 프로야구 해태(9회), 삼성(1회)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최다인 10회 우승의 대기록을 세운 명장 출신. 하지만 한화 감독 시절 팀이 최하위로 떨어치는 수모를 겪었다. 프로 통산 23시즌 가운데 가장 나빴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아주 죽겠어, 죽겠어. 기적인 거 같아. 살아 있는 게”라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등산이 취미야. 산에 가면 혼자 소리를 질러. 김태균 이 XX, 이렇게 퍼붓기도 해”라고 말했다.
새해에는 분통을 삭이는 자신 만의 방법 몇 개 정도 마련해보면 어떨까.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순간 잠시나마 시원한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면 심신의 건강도 지킬 수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