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가족개발원 중고교생 설문 응답자 24% “절망감 느낀 적 있다” 우울증 비율도 높아 대책 마련 시급
청소년 힐링버스 부산시이동청소년쉼터에서 운영 중인 ‘청소년 힐링버스’. 45인승 버스를 개조해 거리를 배회하는 가출 청소년 등에게 휴식과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간호사와 상담사 등이 타고 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은 “힐링버스 운영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시이동청소년쉼터 제공
“새아빠한테 맞을까 봐 아는 언니 집에서 자기로 했는데…. 부모가 있어 함께 못 자고 비상계단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부산 지역 청소년 안전망 추진 현황 및 발전방안’에 등장하는 A 양의 사례다. 보고서는 질병관리청이 부산 지역 중고교생 323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분석했다.
A 양은 설문 조사에서 “비상계단의 불이 꺼지면 무서워서 불을 켜기 위해 몸을 움직이다 보니 밤새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밝혔다. 조사에 응한 B 양은 “집을 나와 서면에서 돌아다니다 성추행을 당할 뻔한 적이 있다”며 “술에 취한 아저씨가 억지로 끌고 모텔에 들어갔는데 경찰이 도와줬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부모와 싸운 뒤 가출해 돈을 구하러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성인을 찾아갔다는 청소년도 있었고, 배가 고파 금은방에서 절도를 했다는 사례도 나온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관계자는 “정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의 경우 부모, 또래 갈등 등으로 문제 행동을 시작했다가 후회를 하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후유증을 겪는 학생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청소년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 청소년의 정신건강 현황을 살펴본 결과 심리, 정서적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 많았고 특히 여성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언급된 청소년들의 심층 면접 사례를 분석한 뒤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개발원은 청소년 안전망 구축과 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발원은 “지자체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지침을 보다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며 “특히 부산의 16개 구군 중 10곳만 관련 규칙을 제정한 상태이고 나머지는 청소년 안전망을 위한 조례나 규칙도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