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살리는 유럽 콘서트홀]〈중〉프랑스 파리 ‘필하모니 드 파리’ 범죄율 높고 서민층 많은 동네로 젊은층 끌어들이려 과감한 선택 2400개 관객석 입체적 배치 통해 값싼 좌석서도 ‘평등한 관람’ 즐겨
우주선이나 미래도시를 연상시키는 ’필하모니 드 파리’의 외관(위 사진). 필하모니 드 파리의 메인 콘서트홀인 ’피에르 불레즈 그랜드 홀’에서 파리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기다리고 있다. 필하모니 드 파리 홈페이지
2015년 1월, 프랑스 파리 북부 라빌레트 공원 남동쪽에 은빛 우주선과 같은 형체가 내려앉았다. 파리의 새 음악 공연장 ‘필하모니 드 파리’였다. 미래와 상상력을 상징하는 시각적 충격으로 화제가 됐던 이 공간은 올해로 건립 8주년을 맞았다. 청년층과 미래의 예술 애호가를 끌어들이고 교육하는 젊은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2006년 프랑스 문화부와 파리시, 파리 중심가의 콘서트홀 살 플레옐의 감독인 로랑 베일은 “파리 북동쪽 19구(區)의 라빌레트 공원에 콘서트홀과 음악교육 시설, 전시회장 등을 갖춘 복합시설 ‘필하모니 드 파리’를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에 새 콘서트홀을 짓기로 한 데는 청년층과 서민층을 공략하겠다는 뜻도 있었다. 파리 19구는 저소득층과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프랑스 정부는 강도, 마약 등 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이유로 2012년 이곳을 ‘특별치안지역’으로 지정했다.
공모에 의해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의 건축 계획안이 최종 채택됐다. 누벨은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아랍문화원과 카르티에 재단, 서울의 삼성미술관 리움 등을 설계한 건축계 거장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2015년 1월 14일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포레 ‘레퀴엠’ 연주로 문을 열었다. 안정된 분위기는 아니었다. 바로 일주일 전,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게재한 데 격분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총격을 가해 편집장을 포함한 직원 10명과 경찰 2명이 숨진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건 주범들의 집도 파리 19구였다. 포레 레퀴엠은 이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곡이 되었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중심 공간은 메인 콘서트홀인 ‘피에르 불레즈 그랜드 홀’이다.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의 이름을 딴 이 홀의 내부도 외관만큼이나 파격을 넘는 낯섦을 준다. 2층과 3층에 발코니형 객석들이 공간을 비죽비죽 치고 나와 있다. 관객이 사방에서 무대를 감싸는 비니어드(포도원)형 콘서트홀의 객석을 마치 집게로 여기저기 잡아당겨 놓은 것 같다.
2400석 규모의 객석을 갖춘 공연장이지만 무대에서 가장 먼 객석까지의 거리가 32m밖에 되지 않아 좌석 등급 간 격차감이 작은 ‘가장 평등한 콘서트홀’로 꼽힌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콘서트홀들은 대부분 40∼50m 간격을 두고 있다.
티켓 가격은 클래식 음악의 경우 100∼160유로(약 13만2800∼21만 원) 정도로 청년층에게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이다. 클래식 이외 장르의 경우 절반이 안 되는 40유로(약 5만3000원) 이하의 가격에 하루 저녁 멋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