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통해 체제 공고히 하는 북한과 달리 한국 강압외교는 국민 불안 리스크 키워 정부, 수사적 확전 합리성 설득해야 한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남북 간 강압 혹은 고통을 주는 날선 공방이 이어지면서 한반도가 연일 긴장 태세다. “평화를 얻기 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과 “현 상황은 나라의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치한다.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서울의 경고에 “새해 벽두부터 호전적 망언과 전쟁 광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 바로 남조선”이라고 평양은 힐난한다.
북한이 “남조선 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2023년 ‘핵무력 및 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이라고 적시하면 한국은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2022년 ‘국방백서’)이라고 되받는다. 누항(陋巷)의 공론장에 한반도의 임박한 전쟁을 쑥덕이는 논객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배경이다.
휴전선을 기점으로 한 한반도의 극단적으로 얇은 ‘전략 종심(縱深)’을 고려하면, 남과 북 모두에 전쟁은 정책적 수단으로서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다. 제2의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초토화라는 희생과 비용을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승전, 즉 패전과 진배없는 이른바 ‘피로스의 승전(Pyrrhic victory)’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수사적 확전을 전면적 전쟁의 전조(前兆)보다는 상대의 더 많은 정책 양보를 끌어내려는 강압외교의 맥락에서 해석할 때, 서울과 평양이 벌이는 과도한 언쟁과 시비는 정치적 합리성을 획득한다. 강압외교는 강제 수단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해 상대의 행동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대외정책적 노력을 뜻한다.
이때 중요한 사실은 강압외교의 성패는 강제 수단 사용 위협의 신빙성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선제 사용과 관련한 문턱을 낮추고, 다종(多種)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빈도를 높이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무인기의 한국 영공 침범을 반복하는 데에는 위협 신빙성을 높여 한국의 정책 양보를 끌어내겠다는 노림수가 뚜렷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 무인기가 한국 영공을 다시 침범할 경우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검토를 거론하거나, 일전 불사의 결기로 적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응징을 강조한 일 역시 한국의 강압외교의 맥락에서 그 위협 신빙성을 높이려는 정책적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반복하는 북한의 도발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강건한 결의를 상대의 정책 양보를 끌어내는 일종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는 한국 정부의 전략적 사고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문제는 그 실효성이다. 평양의 수사적 확전에 맞선 서울의 수사적 확전이 한국정부 강압외교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질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강압외교는 양면게임이다. 강제 수단의 위협 신빙성을 높이려는 정책 시도는 상대 정부에 공포를 심어주는 동시에 자기 국민은 안심시켜야 하는 작업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발의 수위를 전례 없이 높이면서 한국 정부에는 위기감을 조성하는 한편 북한 시민들에게 안심을 주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안정적으로 강압외교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북한에 맞서 함께 도발할수록 시민들은 불안에 휩싸인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강압외교는 시민들의 불안감으로 인해 도발을 지속하기가 힘든 측면이 크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