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경기 양주시 육군 25사단에서 열린 아미타이거 시범전투여단 선포식에서 무인수색 차량과 공격용 드론 등이 선보이고 있다. 동아일보DB
러시아는 2009년부터 막대한 오일머니를 쏟아부어 병력 감축과 대대적인 무기장비 현대화를 추진했다. 2012년엔 ‘국방재무장 계획 2020’이란 명칭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명의의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푸틴식 국방개혁’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군의 첨단 정예화를 시도한 것이다. 10여 년간 400조 원대의 국방예산이 신무기와 장비 도입에 투입됐고, 그 결과 2020년 기준으로 러시아군의 현대화율이 70%에 달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옛 소련의 군사대국 위상을 회복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1년이 다 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등 서방세계의 지원을 고려해도 러시아군의 ‘졸전’은 푸틴식 국방개혁의 총체적 실패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래 안보위협의 정확한 예측과 평가, 그에 기반한 군사전략 수립과 군사력 건설, 지휘·부대 구조 및 작전·전술적 교리, 교육훈련 혁신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국방개혁이 성공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많다. 국방개혁이 자칫 ‘묻지 마식 현대화’의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이는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주변국의 군비 증강 등 엄중한 안보도전에 맞서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우리 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기장비 첨단화에 앞서 미래 위협에 대응할 최적의 군사전략과 지휘구조 및 전력 건설, 전투·훈련 방식 등을 모색하는 것이 국방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적용된 무기전력 체계는 단기간에 실현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40년경에도 지휘 결심과 전력 운용 등 전쟁의 핵심 기능은 인간의 몫이고, AI와 드론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보조역할에 머물 것으로 진단하는 군사전문가도 적지 않다.
한정된 예산과 기간으로 국방개혁의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과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수십 년째 군이 입버릇처럼 강조한 합동성 강화가 대표적 사례다. 천안함 폭침 도발 이후 군은 합동성 강화를 국방개혁의 최대 화두이자 핵심 과제로 보고 수많은 대안을 도출했지만 미완의 성공에 그쳤다. 이는 전력의 중복 투자와 옥상옥(屋上屋) 지휘구조로 인한 군의 관료화·비대화 등 부작용으로 귀결됐다. 우리 영공을 침투한 북한 무인기 대응 부실도 손발이 맞지 않는 합동성의 실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1980년대 중반 골드워터-니콜스법을 토대로 국방개혁을 추진해 합동성 및 통합작전 능력을 구현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최적의 군사력 건설과 실전 적용을 거쳐 최근엔 땅과 바다, 하늘은 물론이고 우주·사이버·전자전을 포괄하는 ‘다영역 작전’으로 국방개혁의 방향을 잡은 상황이다.
반면 우리 군의 국방개혁은 자군 이기주의와 지휘부의 개혁 의지 부족, 국민적 공감대 미흡 등으로 정권 임기에 맞춰 ‘용두사미’로 끝나는 전철을 반복해왔다.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였지만 군의 고질적 난제는 여전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 개혁의 목표와 방법, 수단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백화점식 전력 증강’을 탈피해 우주 기반 감시 전력과 극초음속미사일, 사이버·전자전 무기 등 미래 안보위협에 대처할 비대칭전력 건설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한국형 3축 체계(킬체인·미사일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도 나눠 먹기식 전력 배분이 아닌 북한이 절대로 핵단추를 누르지 못하도록 억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서 전력 증강의 우선순위를 따져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군 지휘부가 이 같은 고언(苦言)과 우려를 잘 새겨서 국방개혁의 성공에 매진하길 기대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