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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100채 중 13채 이미 ‘깡통’이거나 ‘깡통 위험 수준’

입력 | 2023-01-10 11:21:00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가격표가 적혀 있다. 뉴스1


2021년 말 기준으로 집을 팔아도 보증금 상환이 어려운 ‘깡통전세’가 4800채에 달하고, 집값이 최대 30% 떨어지면 그 수가 1만 3000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국책연구소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또 ‘깡통전세’ 직전 수준의 위험상황에 처한 주택은 무려 20만 9300채이며, 주택담보대출금리(이하 ‘주담대’)가 최대 10%까지 오르면 그 수가 22만 9600채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체 전세주택 100채 가운데 13채 이상이 깡통전세 또는 깡통전세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최근의 집값 하락과 금리 급등이 깡통전세 위험을 크게 키울 수 있다는 뜻이어서 우려를 자아낸다.

이에 따라 임대인(집주인)의 전세보증금 상환능력을 확인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고, 전세금의 절반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 예치해두거나 임대차 계약을 공적으로 관리하는 임대차 신탁기관을 설립하는 등 다각적인 정책 대응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 ‘전세 레버리지 리스크 추정과 정책대응 방안 연구’를 발행했다. 보고서는 2015년 이후 매매가와 전세금의 차이가 적은 주택을 대상으로 시세차익을 노린 ‘갭투자’가 증가하면서 매매가나 전세금 하락 시 우려되는 임차보증금 미반환 등과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 ‘깡통전세’ 4800채…‘깡통전세 위험 주택’도 20만 9300채

9일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전세임대주택은 모두 162만 6000채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수도권(91만 7000채)이 비수도권(70만 9000채)보다 20만 채 이상 많았다.

이 가운데 임대인(집주인)이 보유한 현금성 금융자산과 각종 금융권 대출을 더하고, 전세주택을 매각하더라도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이른바 ‘깡통전세’가 4800채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자산과 대출에다 임대주택을 매각할 때에만 보증금 상환이 가능한 ‘깡통전세 위험 주택’도 20만 9300채로 추정됐다. 두 유형을 합치면 전체 전세주택의 13.2%에 해당한다. 100채 가운데 13채 이상이 깡통전세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 집값 30% 하락 시 깡통주택 1만 2900채로 급증

문제는 최근 집값 하락이나 금리 급등에 깡통전세 위험 주택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우선 집값의 경우 최대 30% 하락한다면 ‘깡통전세’가 4800채에서 1만 2900채로 2.7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1주택자로서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 일부나 전체를 내준 경우 집값 하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추정됐다. 깡통전세가 현재 2900채에서 1만 300채 수준으로 급증한 것이다.

이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산하 주택금융연구원의 분석 결과와 유사하다. 주택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말 펴낸 계간학술지 ‘주택금융리서치 28호’에 실린 보고서 ‘보증금 미반환 위험의 추정-깡통전세 아파트를 중심으로’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이 보고서는 전세금이 매매가보다 10% 이상 비싸지는 아파트를 ‘깡통전세’로 분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집값이 내년 상반기(1~6월)까지 10~20% 하락하면 표본주택 26만 9462채 가운데 올 상반기에 4.6%, 올 하반기(7~12월)에 12.5%, 내년 상반기에 14.5%가 각각 깡통전세가 될 것으로 예측됐다. 집값 하락 폭이 10% 이하인 경우에는 같은 기간 각각 3.1%, 7.5%, 8.3%가 깡통전세가 될 것으로 추정됐다.

● 주담대 10% 되면 깡통전세 위험 주택 23만 채

주담대 금리도 깡통전세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나타났다. 다만 최대 10%로 오르거나 신용대출이 12% 수준까지 오를 경우 깡통전세보다는 깡통전세 위험 주택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주담대가 4%로 오르면 20만 9300채에서 21만2800채로 3500채 늘어나고, 10% 오르면 22만 9600채로 2만 채 이상 급증할 것으로 분석됐다.

금리 변화는 보유주택 수에 관계없이 깡통전세 증가로 이어졌다. 1주택자의 경우 3만 700채에서 3만 4900채로, 2주택자 이상은 17만 8600채에서 19만 4700채로 각각 증가한 것이다.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에서 주담대 금리 인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가장 많은 편이며, 금리가 상승할수록 변화폭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크게 나타났다.

● 보증금 예치제도, 임대차 신탁제도 등 도입 검토해야

국토연구원은 이러한 깡통전세나 깡통전세 위험 주택 급증에 대비한 전세제도 개선이나 임대인과 임차인의 손실 분담 구조 개선, 보증금 반환보증제도 개선 등 전반적인 정책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선 임대인의 보증금 상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최우선 변제금액을 높이는 한편 보증금 상환 능력이 높은 임대인과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또 보증금 예치제도를 도입하여 임대인의 보증금 예치를 의무화하거나 보증금을 사용할 경우 임대인이 반환보증에 가입하게 하는 등 보증금 미반환 위험에 대응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주택 소유자가 신탁기관에 임대주택을 등록하고, 신탁기관이 계약 및 운용을 수행하고 소유자는 신탁기관으로부터 운용수익 및 임대기간에 비례한 세제혜택을 받는 ‘임대차 신탁제도’의 도입돼야 한다.

이밖에 담보주택에 대해서만 상환청구가 가능한 ‘비소구대출’ 제도나 책임분담형 대출제도 등 차주-금융기관 간 책임분담 제도 도입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연구를 책임진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부 제안은 전세임대인(집주인)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며 “세제 혜택과 같은 적절한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임대주택 공급이 유지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