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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이상훈]日 공무원은 이해 못한 ‘반도체 규제’라는 말

입력 | 2023-01-11 03:00:00

‘경제 안보’ 자산 확보하려 전 세계 총력전
정치가 기업 뒷다리 잡는 나라에 미래 없어



이상훈 도쿄 특파원


“반도체 규제요? 정부가 반도체 제조를 막고 있냐는 뜻입니까?”

지난해 12월 대만 TSMC 일본 공장이 들어서는 구마모토현을 찾았을 때 현지 공무원과 관계자는 ‘반도체 규제와 관련한 일본 정책을 듣고 싶다’는 기자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화는 대체로 이렇게 흘러갔다.

“반도체 공장 공업용수와 전력 공급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나?”

“이곳은 비교적 용수가 풍부해 수요에 맞춰 공급하면 된다. 전기는 전력회사 생산 범위 내에서 계약하면 된다. 한국에 전기와 물이 부족한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주민이나 시민단체 반발은 없었나?”

“반도체 공장이 생기면 지역 경제가 좋아지니 대체로 환영한다. 반대 시위가 있었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다.”

사소한 것이나마 갈등 해결 사례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 규제 관련 질문을 거듭했다.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못 팔게 규제한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은 있다.”

애써 ‘답’을 생각해낸 공무원은 멋쩍게 웃었고 질문한 기자는 맥이 풀렸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12월 펴낸 ‘반도체 디지털 산업전략’ 정책자료집 본문 첫 페이지에는 푸른색 타원형 삼성전자 로고와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반도체 톱 메이커를 보유한 미국 한국 대만에 더해 독일도 인텔 공장을 유치했다’는 첫 문장은 일본이 격렬해지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세계보다 10년 뒤진 첨단 분야 후진국’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일본은 ‘차세대 반도체에 진출할 마지막 기회’라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 정책은 일개 산업정책이 아니라 ‘경제 안보’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대전략이다. 미일 반도체 협정, 엘피다 메모리 파산 이후 한국 대만 등에 소재, 부품, 장비 보급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일본 정부의 생각은 신(新)냉전 체제에서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본의 반도체 육성 정책 밑바탕에는 ‘전략적 자율성과 불가결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해외에 과하게 의존하지 않는 자율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반도체에서 주저앉아 본 일본은 한 번 뒤처지면 회복할 타이밍을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일본이 이번에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와 현재의 관점과 태도는 다르다. 방위비 재원이 부족하니 증세가 필요하다는 나라지만 세수가 부족해 반도체 기업에 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도체 투자 지원이 대기업 및 지역 특혜라는 논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기술 패권전쟁 승자가 되기 위해 각국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제조업 경쟁력은 한국에도 경제는 물론 안보의 최대 자산이다. 첨단 제조업 초(超)격차 유지를 위한 정부 정치권 기업의 ‘원 팀 전략’ 없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도태되는 건 시간문제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 발목만 잡는 나라와 나서서 지원하는 나라 중 미래 승자가 누구일지는 복잡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다. 허송세월하기에는 나라 밖의 움직임이 너무 숨 가쁘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