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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1호’ 논란에 입 연 축협 “무자격자 고용할 순 없었다”

입력 | 2023-01-11 10:50:00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2701호에 모여 대표팀 선수들과 안덕수 트레이너가 함께 찍은 사진. 안 트레이너 인스타그램 갈무리

대한축구협회(KFA)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불거진 이른바 ‘2701호’ 논란에 대해 한 달여 만에 공식 입장을 냈다. 의무 트레이너 채용 관련 일부 선수와 협회 사이 갈등이 있었지만 규정을 어길 수 없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KFA는 10일 입장문을 내고 “이 문제를 계속 수면 아래로 둔 상태에서 협회 내부적으로 수습하고자 할 경우, 오는 3월로 예정된 대표팀 소집 때 비슷한 오해와 언론 보도가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며 “이제는 핵심 내용을 공개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손흥민(31·토트넘)의 개인 의무 트레이너로 알려진 안덕수 씨는 지난달 브라질과의 16강전이 끝난 뒤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대표팀 숙소였던 카타르 호텔 내) 2701호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연락을 주면 상상을 초월한 상식 밖의 일들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모종의 폭로를 예고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안 씨가 손흥민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을 돌봤음에도 자신을 정식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KFA에 불만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안 씨는 취재진 연락에 일절 답하지 않았고, 추측성 보도가 쏟아지면서 의혹은 점점 커졌다.

침묵하던 KFA는 한 달 만에 입장을 밝혔다. 우선 선수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안 씨를 채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021년 11월 의무 트레이너 모집 공고를 냈는데 안 씨는 무슨 이유에선지 지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안 씨는 KFA가 인정하는 4개 자격증(물리치료사·건강운동관리사·선수트레이너·운동처방사)이 아닌 ‘기본응급처치사’와 ‘스포츠현장트레이너’ 자격증만 소지하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KFA는 또 일부 선수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협회 의무팀장 A 씨가 안 씨의 의무 스태프 합류를 반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어 “아무리 선수들이 원한다 해도 모집 공고에 응시하지도 않은 무자격자를 고용할 수는 없었다”며 “안 씨가 월드컵 기간 중 별도의 공간에서 선수들의 치료를 위해 애쓴 것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의무 스태프가 아닌 장비 담당자로 직책을 조작하면서까지 불법을 묵인하고 조장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안덕수 트레이너가 2주 전부터 카타르에서 선수들을 케어하며 올렸던 글과 사진들. 안 트레이너 인스타그램 갈무리

안 씨처럼 자격증이 없다고 지목된 대표팀 의무트레이너 B 씨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B 씨는 월드컵 당시 ‘운동사’ 자격증만 보유 중이었다. 그러나 2020년 2년 재계약을 맺어 2021년 2월 시행된 관련 법령을 소급 적용해 계약을 해지할 수 없었다. KFA는 “계약이 끝나는 작년 12월까지 국가공인자격(물리치료사·건강운동관리사)을 획득하지 못하면 재계약이 불가함을 통보했다. 이에 B 씨는 지난달 물리치료사 시험에 응시해 최종 합격했다”고 덧붙였다.

KFA는 또 “경기 후 통증을 호소한 선수를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지정병원에 데려가 MRI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안 씨가 촬영 결과에 대해 현지 전문의와 협회 닥터진의 소견과 다른 의견을 선수들에게 전달했다”며 “법적으로 비의료인인 안 씨가 전문 의료진의 판단 영역에 반대 의견을 선수들에게 주입한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협회의 미흡했던 부분을 인정했다. KFA는 “선수들이 오랫동안 요청한 사항이라면 좀 더 귀 기울여 듣고 문제를 해결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했어야 했다”면서 “선수들이 협회 의무 트레이너들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러나 일부 선수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KFA는 “선수들이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헌신과 노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라면서도 “하지만 합법적인 채용 절차를 인정하지 않고 요구를 관철하려는 태도는 온당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KFA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인 트레이너 고용에 대한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KFA는 “최근 선수들이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몸 상태를 더 철저히 관리하는 추세”라며 “협회 공식 의무 스태프와 개인 의무 트레이너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개인 트레이너의 동행이 불가피하다면 어떻게 협력 관계를 조성할지 확실한 대안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