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6/뉴스1
“국민의힘이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길목을 쥐고 있고 본회의 소집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나오다 보니까 지금 일을 못하고 있는 국회가 되고 있지 않느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11일 KBS 라디오에서 “법사위에 100건이 넘는 법안이 그대로 쌓여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법사위만 열어서 처리하면 바로 본회의 열어서 그 많은 법들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게 다 민생 법안들”이라며 법사위원장 자리를 쥐고 있는 국민의힘으로 책임을 돌린 것.
국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8일 기준 법사위에 계류된 다른 상임위원회의 법률안은 167건이다.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안들은 우선 각 상임위를 통과한 뒤 다음 단계로 법사위로 올라와 체계, 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로 상정된다. 각 상임위를 무사 통과하더라도 법사위에 발목이 잡히면 최종 단계인 본회의까지 올라가 보지도 못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박 원내대표 뿐 아니라 민주당 법사위 관계자들은 일제히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법사위원장 때문에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는 상황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여야간 의견이 갈리는 법안이 많으니, 보통은 서로 관철시키고 싶은 법안들을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통과시키는 게 관례"라며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여당의 ‘만 나이법’ 이후로는 국민의힘이 그 어떤 법안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어 ‘거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기동민 의원도 이날 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 논의가 필요한 쟁점법안을 아예 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는다”며 “법사위는 상왕(上王)이 아닌데, 국민의힘은 아직도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해 상왕처럼 굴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법사위 교착' 상황이 길어지면서 민주당 내에선 "국민의힘 탓하기 전에 지난해 원 구성 협상에 실패한 우리 당 원내지도부 탓부터 해야 한다"는 자조섞인 반응도 나온다.
당 내 불만이 거세지면서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대응책으로 ‘법사위 패싱’을 시도하고 있다. 가령 시장에서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수하게 하도록 한 '양곡관리법'의 경우, 정부여당의 반대로 논의가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곧바로 부의해달라고 국회의장에 요청한 상태다. 국회법상 ‘법사위가 법률안이 회부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소관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토대로 법안 직회부를 요청한 것. 해당 조항은 2012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때 법사위의 상왕 노릇을 제한하려 도입됐는데, 실제 직회부 요청이 이뤄진 것은 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직회부 카드를 활용하면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법사위 문턱과 관계없이 필요로 하는 법안을 대부분 관철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여야 합의 원칙을 깨고 ‘입법 독주’를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은 부담이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법사위가 경색 국면인 이상 민주당으로서는 계속해서 법안 통과를 위해 직회부 카드를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이 각종 쟁점 법안을 일부러 법사위 테이블에 올리지 않고 소관 상임위에서 본회의로 직회부하는 전략을 써놓고는 이제 와서 여당 탓을 하는 게 황당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