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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온 자리” 골든글로브, 非백인들에 트로피

입력 | 2023-01-12 03:00:00

아시아-아프리카계 배우 6명 받아… 여우주연 양쯔충 “전부 만끽할 것”
‘인디아나 존스’ 아역 콴도 수상… 아프리카계 배싯 여우조연상
박찬욱 ‘헤어질 결심’ 수상 불발
작품-감독상 스티븐 스필버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10일(현지 시간)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더 페이블맨스’로 극영화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홍콩 배우 양쯔충은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베트남계인 키호이콴은 남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프리카계 앤절라 배싯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왼쪽부터).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골든글로브 시상식 무대에서 전부 다 만끽할 겁니다. 40년 만에 온 자리라 그런지 무대에서 내려가기가 싫네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턴 호텔에서 10일(현지 시간) 열린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말레이시아 출신 홍콩 배우 양쯔충(양자경)이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와 함께 미국 양대 영화제로 꼽히는 골든글로브는 지난해 인종·성 차별 논란과 운영진의 부정부패 의혹으로 파행을 겪었다. 할리우드 영화계가 보이콧을 선언한 데 이어 주관방송사 NBC가 시상식 중계를 하지 않은 것.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골든글로브 측은 올해 시상식에서 아시아·아프리카계 배우 6명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골든글로브는 극영화, 코미디·뮤지컬 영화 등 부문에서 전체 16명의 배우에게 주·조연상을 수여한다.

양쯔충과 ‘에브리씽…’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며 남우조연상을 받은 베트남계 미국인 배우 키호이콴은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수상자였다. 그는 수상자로 호명되자 환호성을 지르며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품에 안기까지 걸린 세월은 무려 38년. ‘인디아나 존스’(1984년)에서 잔망스러운 소년 쇼티 역을 맡았던 그는 아시아계 배우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나 배우의 꿈을 놓지 않았다.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년)이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오디션부터 다시 도전했고 결국 골든글로브 시상대에 올랐다. 이날 그는 트로피를 두 손에 소중히 안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여우조연상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 라몬다 여왕을 연기한 앤절라 배싯에게 돌아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의 생애 두 번째 골든글로브 수상이다. 29년 전 영화 ‘왓츠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1994년)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골든글로브 사상 첫 아프리카계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운 그는 이번엔 마블 스튜디오 영화 출연 배우 최초 골든글로브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비영어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아쉽게도 수상이 불발됐다. 상은 산티아고 미트레 감독의 영화 ‘아르헨티나, 1985’에 돌아갔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2020년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이듬해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미나리’가 같은 상을 탔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가 TV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헤어질 결심’의 골든글로브 수상은 불발됐지만, 3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가능성은 남아 있다. ‘헤어질 결심’은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1차 후보로 지명된 상태다.

한편 골든글로브 극영화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은 ‘더 페이블맨스’를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돌아갔다. ‘더 페이블맨스’는 스필버그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영화계에 입성하기까지의 삶을 그린 반자전적 영화다. 거장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도전이었다. 올해 77세인 그는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74세가 됐을 때 ‘(이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만들게 돼 정말로 행복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