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된 예술.”
프랑스의 요리 백과사전인 라루스 요리 백과는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를 이렇게 정의한다. 미식 작가인 샤를 몽슬레는 ‘가스트로노미’라는 단어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나이의 사람들이라도 모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에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는 이 단어는 한국어로는 ‘미식’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미식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역시 프랑스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게 된 프랑스 왕족과 궁정의 요리사들은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을 열었고, 이내 그 레스토랑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호화로운 궁정의 향연과 귀족의 밥상을 책임지던 우리네 대장금 같은 이들이 대중 레스토랑을 차렸으니 그 수준은 더없이 훌륭했고 귀족 음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19세기 말 프랑스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을 제창하며 세계에 프랑스 요리의 우수성을 알리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스트로노미 레스토랑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미슐랭 스타의 획득 여부로 결정된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음식의 퀄리티와 훌륭한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잘 훈련된 웨이터의 서비스, 훌륭한 와인을 고객에게 잘 설명하고 서비스하는 소믈리에 등 각 분야의 전문가까지 아우른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과 고정비용이 들기에 음식만으로 승부하고 싶은 셰프들은 미슐랭 스타 셰프가 되는 것을 마다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었던 ‘가온’이 지난해 말 영업을 종료했다고 한다. 프랑스 가스트로노미 레스토랑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 레스토랑은 지난 2년간 3차례에 걸친 셧다운으로 인해 경영난에 빠졌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한 원재료 가격의 상승, 최저 임금 인상까지 겹치며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2023년은 세계적 경제공황이 오리란 암담한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심각한 상황의 여파로 내년에는 더 많은 파인다이닝 식당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귀한 손님 접대를 위해 식사 한 끼에 수십만 원씩 지불할 때마다 파리 레스토랑 오너들은 엄청난 부자가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프랑스 파인다이닝계의 깊은 한숨을 읽을 수 있었다. 피에르 가녜르, 알랭 뒤카스, 기 사부아 등 스타 셰프들의 뒤를 이을 실력자들의 부재 또한 프랑스의 미식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