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도미에 ‘삼등 열차’, 1863∼1865년.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문장이다. 1970년대 한국 사회의 계급 불평등을 조명한 이 소설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삼등 열차’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은 한겨울 삼등 열차 속 풍경을 보여준다. 좁고 춥고 더러운 객차 내부, 딱딱한 나무 벤치에 여행자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다. 맨 앞줄에는 초라한 행색의 가족이 나란히 앉았다. 왼쪽 젊은 엄마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다. 아기가 깨면 윗옷을 열어 젖을 물려야 할 테다. 가운데 할머니는 바구니를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깊은 상념에 잠겼다. 오른쪽 소년은 피곤한지 머리를 떨어뜨리며 졸고 있다. 아이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도미에는 권력자나 부르주아를 날카롭게 풍자한 그림으로 고초도 겪고 이름도 날렸지만, 그의 관심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있었다. 노동자, 세탁부, 약장수 등 도시 빈민의 우울한 심리를 꿰뚫어 묘사했다. 그 역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꼈던 것 같다. 화가가 된 뒤에도 캐리커처나 삽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 도미에가 삼등 열차를 주제로 그리기 시작한 건 40대 후반, 크게 앓고 난 뒤 경제적,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같은 주제로 석 점이나 그렸는데, 이 그림이 마지막 작품이고 완성도도 가장 높다. 하지만 급진적인 건 환영받지 못하는 법, 이 그림은 도미에가 죽기 1년 전에야 공개됐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