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의료 악화] 소아과 의사 부족… 부모들 발동동 어린이 환자, 국립대병원 진료대기 5년새 9.7→16.5일 2배가까이 늘어
11일 서울의 한 국립대병원 복도 대기실에서 어린아이와 부모들이 소아 외래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대기 좌석이 만석인 가운데 아이를 안고 서서 기다리는 남성도 보인다. 최근 수년간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부족해지면서 외래 진료 환자들의 대기 일수도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에 사는 김모 씨(35)는 아들 이모 군(18개월)을 동네 소아과의원에 데려갔다가 “유아 사시(斜視)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이 필요할 것 같으니 큰 병원에 데려가 보라며 진료의뢰서를 써 줬다. 급한 마음에 서울 시내 주요 대학병원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소아안과 담당 교수 예약은 1년 이상 꽉 찬 상황”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아픈 아이 대학병원 진료까지 16일 대기… 5년새 2배 가까이 늘어
소아과 의사 부족
새내기 의사들 “소아과 돈 안돼” 기피
소청과 모집공고 낸 10개 국립대중
서울대 등 3곳 빼고 7곳은 지원자 ‘0’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해 말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입원 병동 운영을 올해 2월 말까지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길병원 소청과는 “전공의(레지던트) 정원이 12명인데, 이 중 근무 가능한 의사가 1명밖에 남지 않았다. 도저히 입원 병동을 유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소청과 전공의는 주로 입원 환자를 돌보고, 야간 당직을 서며 응급 환자를 담당한다. 이 때문에 전공의가 부족해지면 입원, 응급환자 진료부터 차질이 생긴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대목동병원 등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소청과 야간, 응급실 진료를 정상적으로 보지 못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 “돈 안돼” 기피…의사 부족
하지만 이후 5년 사이 지원자가 급감했다. 올 상반기(1∼6월) 207명을 뽑는데 33명밖에 지원하지 않았다. 이번에 소청과 전공의 모집 공고를 낸 전국 국립대병원 10곳 중에서 지원자가 1명이라도 있는 곳은 서울대(10명) 전북대(1명) 충북대(1명) 등 3곳뿐이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소청과학회)는 2년 뒤엔 전국 병원의 소청과 전공의 자리 5곳 중 4곳이 공석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소청과 떠나 요양병원 이직하는 의사들
소청과학회 조사에 따르면 소청과 수련병원의 75%는 이미 부족한 전공의를 대신해 전문의가 야간 당직을 서고 있다. 최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밤을 새우고 나면 최소한의 휴식이 필요하다. 교수가 당직을 서는 날이 늘수록 감당 가능한 외래 환자 수는 줄어든다”고 말했다.병원들은 소청과 전문의를 지금보다 늘리긴 어렵다고 말한다. 한 비수도권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교수님들이 외래진료 1세션(3시간)당 50여 명의 환자를 보고 있지만, 소청과는 수가(酬價·병원에 지급되는 진료비)가 전 과목에서 최저 수준이라 의사를 더 뽑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소청과 근무를 포기하는 전문의가 늘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소청과 전문의는 “지방 중소병원들에선 격무를 견디다 못해 ‘소청과 전문의’ 타이틀을 버리고 요양병원 등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병원 사정 때문에 아픈 어린이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 전향적인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