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1일 “더 (북핵) 문제가 심각해져서 대한민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만약 그렇게 되면 오랜 시간 안 걸려서 우리 과학기술로,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이라는 단서를 붙였고 “그러나 늘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미 공조를 통한 미국의 핵우산 강화가 최선책이라는 점을 밝힌 전제에서 한 발언이었지만 파장은 컸다.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발언이었다. 최근 북한의 전술핵 도발 위협과 관련해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 등 대북 강경발언을 쏟아 내고 있는 맥락에서 이해되었기에 파장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 안보당국들은 일제히 “바이든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는 불변”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전략핵과 한국 일본을 타깃으로 하는 전술핵 개발을 완료하고 법제화까지 했다고 공언하는 마당에 한국도 상응하는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보수 진영의 숙원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실현을 위한 액션플랜을 준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자체 핵무장이라는 정책선택의 키는 ‘비대칭 동맹국’인 미국이 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13일 외교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따라서 우리는 ‘북핵 문제의 악화’라는 원인과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결과 사이에 게재해 있는 중요한 ‘블랙박스’인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과정이 무엇인지 미리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 외교사의 흐름 속에 고립주의와 개입주의를 오가며 대외정책의 큰 틀을 바꾼 정책결정 전환이 사례들은 적지 않다. 특히 나치 독일의 침략에 맞닥트린 영국이 고립주의 속에 잠자고 있던 미국을 깨워 참전시키는 과정은 참고할 대목이 많다.
나치와의 전쟁 시작 직후인 1940년 5월 영국 전시 내각 수상에 오른 윈스턴 처칠은 아돌프 히틀러의 파상공세에 시달렸다. 독일 잠수함 ‘U-보트’와 전투기 폭격에 따른 영국 전함 피해는 날로 커져갔고 결국 미국에서 해군력을 지원받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다. 지금 한국에 자체 핵무장이 점차 긴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1945년 얄타회담에서 만난 처칠 영국 수상과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스탈린 소련 서기장(왼쪽부터). 동아일보DB.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200척의 구축함이 있었고 대략 50척은 빌려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다시 고립주의로 회귀한 미국의 의회는 행정부가 전쟁 중인 국가에 전투함을 빌려주는 행위를 겹겹이 규제하고 있었다. 1917년 방첩법은 그것을 불법행위로 보았다. 미국인들의 고립주의 정서에 편승한 의회는 구축함의 대여는 물론 판매도 승인하지 않을 기세였다. 대통령이 군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의회의 승인 없이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3선을 노리는 루즈벨트는 의회를 우회할 자신이 없었다. 처칠이 해군성 장관이던 1939년 9월부터 서신교환을 시작해온 루즈벨트였지만 그해 연말 3선에 도전하는 루즈벨트에게 우호국 영국의 요청보다 중요한 건 국내정치였다.
이에 고무된 처칠은 7월 31일 곧바로 루즈벨트에 대한 편지 공세를 이어나갔다.
“최근 10일 동안 우리는 11척의 구축함을 잃거나 손상당했습니다. 구축함은 공중폭격에 취약합니다. 하지만 적의 해상침투를 막기 위해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의 손상을 오래 버텨낼 수 없습니다. 실질적인 증강이 없다면 전쟁의 전체 판세는 작은 요인에 의해 결정 날 겁니다. 이것이 솔직한 우리의 현재 상황입니다. 대통령 각하,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는 길고 긴 세계 역사 속에 이것은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임을 말씀드립니다.”
영국을 걱정하는 미국인들의 노력도 계속됐다. 미국의 전쟁영웅인 존 퍼싱 대장의 라디오 연설 이후 타임지와 뉴욕타임즈 등 유력지들이 ‘영국은 구축함을 원한다’는 배너 광고를 실었다. 변호사인 딘 애치슨 등은 ‘대통령이 의회의 조치 없이 영국에 구축함을 양도할 수 있다’는 글을 실었다. 이에 힘을 얻은 루즈벨트는 미국이 영국에 50척의 구축함을 지원하는 대신 영국이 미국에 뉴펀들랜드와 버뮤다, 바하마 자마이카 등 8곳의 기지를 99년간 임대하는 방안을 의회의 승인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동아일보DB.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미국에선 우호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도 국가이익에 우선한 ‘거래’의 양태를 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구축함 지원을 가로막는 국민의 고립주의와 의회를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영제국의 해양기지라는 대가를 근거로 내세워 넘어섰다. 우호국이라도 무조건 지원하기보다 상응하는 안보상의 이익을 대가로 지원을 교환한다는 ‘상호주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부간의 거래가 성사되기 전에 민간 엘리트들이 여론을 움직였다. 이른바 ‘센추리 그룹’이라고 역사가 기록하는 미국인들은 의회에 가로막힌 루즈벨트 행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 내부 여론에 호소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 정책의 ‘힘의 중심부’는 바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국민의 여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루즈벨트가 민간 여론 주도층의 지지와 여론의 호응을 확인하고서야 영국 지원에 나선 것은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에 미칠 영향이 주요 고려 요소였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외교정책의 결정과정에 결정자의 국내정치적 고려가 강하게 게재된 사례다.
83년 전 영국과 미국의 전시 무기대여 협상을 현재의 한국의 핵무장 논의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한국의 핵무장 논의에 결정적인 요소가 ‘미국의 정책결정’이라고 본다면 몇 가지 시사점을 추릴 수 있다.
미국에 한반도와 일본 비핵화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원칙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대만 등도 도미노로 핵무장을 하게 돼 사실상 NPT체제가 붕괴되어 버린다. 하지만 역사의 어떤 국면에서 만일의 하나 미국이 한국 비핵화를 허용할 수 있다면 영국이 구축함 지원을 대가로 해군기지를 내놓은 것처럼 한국도 미국이 바라는 무언가를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이미 대중 봉쇄에 나선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역내 동맹국들과의 양자 다자간 협상에서 다양한 정치 경제적 기여와 희생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그 무엇이든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결기가 우리 국민들에게 공유되어 있는가?
미국 오피니언 리더 그룹이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한다면 정책결정 변화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 일부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과 일본의 독자적인 핵무장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센추리 그룹’이 처칠과 루즈벨트를 지원했던 것과 같은 결정적인 지원 세력은 아직 없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대한 철두철미한 공공외교 강화를 통해 그런 지원그룹을 조직하고 육성하고 있는가?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앞서 말한 공공외교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관계의 힘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외교다. 또 그 핵심은 정상 대 정상간의 진정한 소통이 이다. 미국 내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대통령의 결단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전에 소통의 문화를 조성하고 그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처칠은 2차대전 중 루즈벨트 대통령과 수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것 외에 위에 소개한 것을 포함해 1300여 통의 비밀 편지를 썼다.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할 상황이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그럴 땐 잘 할 수 있다는 호소는 한국의 지지층과 여론이 아니라 우선 미국 여론과 그의 지지층을 향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전략적이고 은밀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참고문헌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영국 구축함 지원 정책결정 과정에 대해서는 Jean Edward Smith, FDF(New York: Random House, 2007); 권용립, 미국 외교의 역사(서울: 삼인, 2010) 참고. 처칠 수상의 루즈벹트 대통령 설득의 리더십은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의 ‘윈스턴 S. 처칠-전쟁과 평화의 위대한 리더십(서울: 박영사, 2019)’ 참고.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