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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돌아온 ‘판교맨’들 “재택 효율 떨어져” vs “복지 뺏긴 셈”

입력 | 2023-01-14 03:00:00

[위클리 리포트] 코로나 꺾이자… IT업계 ‘오피스 퍼스트’
실적악화 직격탄 맞은 게임3사, 작년 6월부터 전직원 출근 전환
카카오도 사무실 출근이 원칙… “정상 출근보다 업무 효율 한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기점으로 정보기술(IT) 업계는 재택근무를 공격적으로 도입했다. 최근 일부 기업이 효율성을 이유로 ‘출근’으로 회귀하자 “줬다 뺏는 셈”이란 반발도 나온다. 재택근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 “원격근무가 ‘뉴 노멀’(새로운 표준)이라더니 몇 년을 못 가네요.”

경기 성남시 판교의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A 씨는 최근 회사가 재택근무 방침을 철회한 것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회사가 재택근무를 늘리자 야근 때 이용하던 회사 앞 월세방을 뺐던 그는 최근 다시 회사 인근 오피스텔을 구하는 중이다. A 씨는 “재택근무를 할 때는 출퇴근 시간을 아껴 업무에 집중하거나 자기계발을 할 수 있었다”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 “재택근무가 좋긴 하지만 조금 이르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반면 다른 IT 기업에 근무 중인 부장급 직원 B 씨는 재택근무에 다소 회의적이다. 그는 “대면 회의를 하거나 함께 커피를 마시는 과정에서 나온 한두 마디가 창의적 아이디어로 발전하기도 한다”며 “사무실에서는 몇 초면 끝날 소통을 메신저로 하는 게 번거로울 때도 있다”고 했다. 육아, 가사 등의 부담이 모두에게 다른 만큼 재택근무 환경에 차이가 있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 사무실로 나오는 IT 업계

13일 오전 경기 성남시 판교역을 나온 직장인들이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판교 소재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최근 재택근무를 축소하고 사무실 근무를 늘리고 있다. 성남=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판교가 들썩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앞장서서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 혼합) 등을 도입했던 IT 업계의 근무 환경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양한 원격·재택근무를 도입하던 기업들이 노선을 선회해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 모으고 있다. IT 경기가 한풀 꺾이며 노동 시장의 주도권이 근로자에서 회사로 넘어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시작은 실적 악화를 겪은 게임업계다.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인 ‘3N(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은 모두 지난해 6월 재택근무를 종료하고 전 직원이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들 기업은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년 전면 재택근무, ‘3(일 출근)+2(일 재택)’ 근무제 등을 혼합해 운영해 왔으나 실적 악화, 신작 출시 지연 등의 상황이 이어지자 재택근무를 폐지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집에서 일할 때가 아니라는 위기감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신작 게임 출시 전에는 스토리, 그래픽, 음향 등 각자의 영역을 가진 수백 명의 개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며 “재택근무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노사 모두가 이해했다”고 했다.

게임업계 직원들이 사무실로 복귀하던 지난해 여름 오히려 재택근무를 확대하던 카카오마저 올 3월 사무실 출근을 원칙으로 하는 ‘오피스 퍼스트’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상시 원격근무 체제에 들어간 후 약 6개월 만인 지난해 말 사무실 근무로 돌아오기로 했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재택근무가 효과적이거나, 재택근무가 불가피한 경우 최소 단위 조직(셀)장의 승인에 따라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카카오게임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의 계열사들도 카카오 본사를 따라 재택근무에서 사무실 근무로 복귀하기로 했다. 다른 계열사들도 근무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한 없이 재택근무를 사용할 수 있던 SK텔레콤도 다음 달 1일부터 재택근무를 주 1회로 제한한다. 당근마켓도 올해부터 기존의 전면 재택근무(필요시 주 1회 사무실 근무)에서 주 3회 사무실 출근으로 제도를 바꿨다.


●“재택근무로 구성원 간 소통 어려워”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줄이는 것은 소통이 어렵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한 IT 기업 관계자는 “재택근무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며 “코로나19 확산 초기 출퇴근 시간 감소, 여가시간 확보 등의 장점이 부각돼 재택근무가 확대됐다면 이제는 물리적 교류의 부족, 효율성이나 근태관리 등의 어려움이 부각돼 줄어드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재택근무의 효율이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응답 62개사)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 시 체감 업무생산성이 정상 출근했을 때의 ‘90%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2021년 40.9%에서 지난해 29.0%로 줄었다. 반면 ‘80% 미만’이라는 응답은 같은 기간 19.7%에서 40.4%로 늘었다. 인사담당자의 주관적 평가라는 한계가 있지만 업무 현장에서 재택근무의 업무 효율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조직의 분위기 쇄신도 재택근무를 줄이는 이유 중 하나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사무실 근무 비중을 높인 기업들을 보면 지난해 실적 악화, 리더십 변화 등 어려운 상황을 겪은 경우가 많다”며 “분위기 전환을 위해선 함께 일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재택근무가 효율적이라는 확신을 갖고 이를 확대하는 사례도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이달 1일부터 ‘근무지 자율 선택제’를 도입했다. 기존 주 1회 사무실 출근 제도 대신 아예 근무지 제한을 두지 않는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정해진 필수 근무 시간만 지킨다면 외국에서 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경험하며 구성원에게 주어진 자율과 그에 따른 책임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6개월마다 ‘전면 재택(R타입)’ ‘주 3일 이상 사무실 출근(O타입)’을 고를 수 있는 ‘커넥티드 워크’ 제도를 유지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재택보다 원격에 방점을 찍은 근무제도”라며 “R타입을 선택했더라도 필요할 경우엔 사무실에 나와 공용좌석에서 일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도 주 2회 재택근무 방침을 지킨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도 기존 유연근무 체계를 유지한다.


●‘재택근무=복지’ 반발하는 직원들



기업들이 재택근무 축소에 나섰지만 직원을 사무실로 다시 불러 모으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재택근무를 경험하며 효용을 경험한 직원들의 반발 때문이다. 성장산업의 정체로 인력 수요가 줄어들면서 다시 노동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회사 측과 근로자 측이 근로 환경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카카오 직원은 “재택근무가 사무실 근무보다 효율성이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명백한 근거를 회사가 제시하지 않았다”며 “경쟁사가 유지하고 있는 제도를 직원과 소통 없이 줄이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회사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근로자들의 움직임도 포착된다. IT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 노동조합인 ‘크루유니언’은 본사 기준 임직원 가입률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카카오 본사 직원은 3600여 명이다. 이르면 다음 주초 크루유니언 측은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과반 노조 달성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3월 설립된 카카오 노조는 직원들의 가입률이 지난해까지 10%대에 머물렀다.

최근 재택근무가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복지 혜택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점도 직원들의 불만이 커진 요인으로 풀이된다. 카카오 일부 계열사는 직원 모집 공고 홈페이지에 복지 혜택으로 ‘원격근무와 유연근무’를 써놓기도 했다. 상당수 IT 기업이 식비, 주거비 등의 부담이 큰 판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도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선호하게 만든다.


●‘성과급 논란’처럼 확산될까



일각에서는 재택근무 축소를 둘러싼 IT 업계의 논란이 2021년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불거졌던 ‘성과급 논란’처럼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SK하이닉스의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경쟁사만큼 임금상승률, 성과급을 보장해준다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반발이 나왔다. 이들은 반도체 업계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수원갈비집(삼성전자)’과 ‘이천쌀집(SK하이닉스)’으로 부르며 인재 확보를 위한 성과급 인상 경쟁을 일일이 비교했다.

국내 대표 IT 플랫폼 기업으로 꼽히는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에서 카카오 외엔 재택근무 축소에 나선 기업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기업들이 근무 환경 변화로 실력 있는 개발자 등을 타사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애플이 재택근무를 해제하고 주 3회 사무실 근무 방침을 정하자 구글에서 스카우트해온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개발자가 반발하며 퇴사한 뒤 구글로 복귀한 일이 있었다.

다만 반도체 호황기로 호실적이 이어지던 2021년과 달리 현재 글로벌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변수로 보인다. 경기 호황기와 달리 경기 침체기에선 고용 시장의 주도권이 직원에서 회사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조직 규모가 대폭 커지는 바람에 당장 인재 부족으로 인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낮은 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풀이된다. 2019년 12월 3492명이었던 네이버 직원은 지난해 6월 4885명으로 39.9% 늘었고, 같은 기간 카카오 직원은 2701명에서 3603명으로 33.4%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에선 근로 환경의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 중 일부가 이탈하더라도 당장 회사 운영엔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트위터 “주당 40시간 사무실 근무” 디즈니 “일주일 중 4일은 회사 나와라”



글로벌 기업들도 재택근무 잇달아 철회


해외 기업들도 속속 재택근무를 철회하고 있다. 자유로운 근무 환경을 보장하는 것 못지않게 직원들이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게 창의적인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대표적인 재택근무 반대주의자로는 테슬라와 트위터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있다. 머스크는 지난해 10월 트위터를 인수한 뒤 직원들에게 보낸 첫 번째 e메일에서 “트위터 앞에 놓인 길은 험난하고 성공하려면 치열한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며 “주당 최소 40시간의 사무실 근무를 하라”고 썼다. 사실상 재택근무를 금지한 것이다. 머스크는 지난해 6월 테슬라에서도 “직원들은 주 40시간 출근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재택근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디즈니도 사무실로 직원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재택과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 “3월부터 일주일에 4일은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라”고 지시했다.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디즈니를 이끌었던 아이거 CEO는 지난해 11월 실적 부진으로 해임된 밥 체이펙을 대신해 CEO를 맡았다. CEO를 다시 맡은 지 두 달 만에 재택근무 축소를 결정한 것이다.

앞서 2020년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재택근무의) 좋은 점을 못 찾겠다”며 재택근무에 대해 혹평하기도 했다. 그는 “직접 대면해 아이디어를 놓고 토론하는 게 어렵다”고 재택근무의 단점을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넷플릭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따로 정해진 근무체계 없이 업무에 필요한 경우 원격·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여전히 재택 중심의 근무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메타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10년 이내 페이스북 직원 절반은 집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메타의 글로벌 담당 사장 닉 클레그, 인스타그램 서비스 책임자 아담 모세리,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앨릭스 슐츠 등은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가 아닌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원격 업무를 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