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전쟁/제프리 로버츠 지음·김남섭 옮김/744쪽·4만5000원·열린책들
1945년 2월 크림반도 얄타에서 열린 연합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대원수(앞줄 왼쪽부터). 동아일보DB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함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인물이 ‘조지아의 도살자’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다. 1922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그가 대숙청과 소수민족 강제이주 등으로 죽인 사람은 수천만 명에 이른다.
그가 저지른 악의 증거와 피해자들의 고통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러나 비난은 이내 의문과 마주한다. ‘스탈린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나?’
한 가지 답은 ‘스탈린이 매우 유능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코크대 명예교수로 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 외교 정책의 권위자로 꼽히는 저자는 특히 스탈린이 2차 대전 동안 지도자로서 얼마나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명령은 효과를 냈다. 도망치는 지휘관을 총살하는 등 무자비한 규율 체계가 작동한 ‘붉은 군대’는 어마어마한 소모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잃지 않았다. 소련군은 이 전투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독일군 사령관을 포함해 9만여 명의 포로를 붙잡으면서 히틀러에게 처음으로 대패를 안겼다.
한 해 전 모스크바 방어전에서도 스탈린의 역할이 컸다. 수도를 빠져나가던 주민들의 불안감은 스탈린이 수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라디오 방송으로 전해지자 누그러졌다. 스탈린은 연설을 통해 히틀러와의 싸움을 ‘유럽의 노예화된 인민을 해방시키는 투쟁’으로 규정하며 군과 주민의 전의를 끌어올렸다.
스탈린은 또한 군의 활력을 높이고 혁신적 분위기를 유도했으며, 전쟁을 위한 자원을 매우 성공적으로 동원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스탈린이 소련에 우호적인 체제를 동유럽에 수립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뿐 냉전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전후 소련과 서방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에는 서방 측의 책임도 크다는 얘기다.
독재자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이해해야 제대로 된 비판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찬찬히 읽어볼 만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