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2023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보는 눈이 없고 편한 분위기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 데 모이다 보니, 이곳에서는 소속 정당과 정파를 떠나 흉금을 터놓는 솔직한 대화가 자주 이뤄진다는 게 의원들의 말이다. 지난해 말, 국민의힘 A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B 의원과 이곳에서 만나 나눈 대화 한 토막.
“우리 대표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B 의원)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내부에서 정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A 의원)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렇지….”(B 의원)
한 야권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보여주듯이 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며 “그런데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 때문에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묻히고,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1대 1 구도’가 잘 안 만들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제1야당 대표가 직접 대통령과 맞서 문제점도 지적해야 하고 야당이 생각하는 국정 운영의 방향도 제시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보수 진영의 지도자라는 입지를 굳혀갔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반대편에 섰다. 2015년 2·8전당대회에서 야당 대표가 된 문 전 대통령의 첫 일성(一聲)은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이었다.
이 대표도 12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폭력적인 국정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뒤이은 질의응답에서 나온 첫 질문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대표가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한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회동도 마찬가지다. 날선 반응을 면전에서 들어야 하는 제1야당 대표와의 회동은 대통령에게 달가울 리 없는 자리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실에는 이 회동을 피할 결정적인 핑계가 있다. “본인의 사법적 문제부터 다 처리한 다음에 하는 게 맞다”(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것.
여기에 민주당의 또 다른 고민은 “전선(戰線)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친문(친문재인) 진영 의원의 말이다.
“지금 검찰의 수사를 보면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성남FC 등 이 대표 개인과 관련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문재인 정부 정책에 관한 것이다. 정책적인 판단이 수사 대상이 맞는지는 분명히 다퉈볼만한 이슈다. 그런데 우리가 검찰을 성토하면 ‘이 대표에 대한 수사 때문에 야당이 반발하고 있다’는 시선에 막히게 된다.”
제1야당이 집권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여론의 지지에서 나온다. 제1야당의 주장에 공감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면, 대통령실도 무작정 야당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은 지금, 민주당은 아직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만 ‘경청투어’일 뿐 사실상 대선 선거 운동을 다시 하는 행보를 이어간다고 과연 민심이 돌아올까. 친이(친이재명)계 의원들조차도 “이 대표가 ‘당은 당이고, ‘사법리스크’는 내 문제‘라고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는 이유를 민주당은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적으로 봐도 제1야당이 이런 내부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는 건 결코 좋지 않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견제와 균형이다. 이를 위해서는국정 운영의 한 축인 야당이 정권을 견제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