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8년 위암 장지연 선생이 발간한 여자교과서 ‘여자독본’ 하권. 유교적 여인상을 주로 다룬 상권과 달리 하권에서는 국가존망 위기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운 동서양의 여성이 소개된다. 박시언 연구원 제공
“사로탈(샤를로트 코르데)은 글 읽기를 좋아하여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았다.…마침내 법국(프랑스)에 대혁명이 일어나니…세력가 마랍(장 폴 마라)이 있어 전국의 대권을 잡고 백성에게 포학한 정치를 펴 백성의 상함이 한정 없었다. 사로탈이 홀연히 전국의 백성을 구원할 것을 생각하였다. …사로탈은 곧 마랍의 곁에 이르러 능릉한 칼날로 그의 가슴을 꿰었다.”
“백 년 전에 미주에서 흑인 노예를 매매하여 부렸다.…비다 여사(해리엇 비처 스토)가…천고에 없어지지 아니할 의론을 세워 수만 명 흑인 노예의 구세주가 되었다.”
당시 여성 교육은 ‘현모양처’에 초점을 뒀다는 인식이 많지만 ‘여자독본’에는 전쟁, 혁명 등 역사적 격변기에 주체적 역할을 한 여성들 모습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박시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은 11일 학술대회 ‘동아시아 권력과 시각표상’에서 발표한 ‘근대 전환기 비일상(非日常) 표상과 여성교육’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자 장관을 지낸 임영신씨. 동아일보DB
박 연구원에 따르면 여자독본에는 군사를 진두지휘하거나 총과 칼을 들고 전투에 참여하는 여성 인물이 잔 다르크(1412~1431)를 비롯해 7명 등장한다. 프랑스 혁명기 여성 영웅 롤랑 부인(1754~1793) 등이 도전적인 혁명가의 모습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박 연구원은 이러한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나중에 1919년 3·1운동의 주축이 됐다고 봤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주 지역 3·1운동의 중심에 섰던 기전여학교다. 학교에서 여자독본을 통해 동서양 여성들의 저항의식과 투쟁을 접한 이 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의 준비와 진행까지 전 과정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 학교 졸업 후 소학교 교사로 일하던 임영신 씨(1899~1977)는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1887년 일본 쇼켄 황후 지시로 발간된 여자 교과서 부녀감. 박 연구원 제공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여성용 교과서인 ‘부녀감’(1887년)이 발간됐지만 ‘여자독본’과는 차이점이 적지 않다. 일본 메이지 천황의 부인인 쇼켄(昭憲) 황후(1849~1914)의 지시로 발간된 이 책은 여성을 복수나 저항의 주체로 그리지 않았다. 전쟁에서는 부상병을 간호하고 군복을 만드는 등 후방을 방어하는 모습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벌였던 일본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경과 민족, 인종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의 연대나 자유로운 지리적 이동을 보여준다고 박 연구원은 설명했다.
최훈진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