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수박을 살 때 잘 익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하는가. 나는 무조건 두들기고 보는데, 그래도 긴가민가할 때가 많다. 생긴 것만 봐서는 속을 알 수 없는 게 수박이다. 난데없이 수박 이야기를 꺼낸 건 화날 때 수박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돼서다. 나를 화나게 한 그 사람 속을 알 수 있을까. 수박 속도 모르는데 하물며 사람 속은 어찌 알랴. 수박을 떠올리면서 심호흡을 한 뒤 ‘나는 저 사람 속을 모른다’ 하고 되뇌어 보자. 그러면 욱하고 올라오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에 대해 미심쩍은 점을 선의로 해석해보자.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보는 거다. 미심쩍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확증이 없다면 상대에게 유리한 쪽으로 봐주라는 얘기다. 타인, 심지어 가족조차도 진심을 알 순 없다. 저마다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박처럼 사람 속도 ‘모른다’가 기본값인 것이다.
수박요법을 익히면 누군가 나를 욱하게 했을 때 화가 쑥 가라앉을 것이다. 욱하는 빈도가 줄어들면 정신 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 상대방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사고범위가 확장돼 공감 능력이 높아진다. 공감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 필수 능력 중 하나다. 좀 더 이해하려 애쓰면 상사에게 모진 말을 들어도 의도를 확대해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수박 속을 모른다.”
※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2020년 10월 유튜브 채널 ‘닥터지하고’를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와 명상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1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17만1000명이다. 에세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와 육아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