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작품 ‘귀향’ 앞에 선 작가 제이디 차. 사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알록달록한 무늬 속 신비로운 풍경 앞 한 여자가 서 있다. 부엌칼과 배추 김치가 그려진 외투와 소라를 갑옷과 투구처럼 쓴 여자는 관객을 정면으로 쳐다본다. 한국계로 캐나다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제이디 차(40·한국명 차유미)의 자화상의 모습이다. ‘귀향’이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그녀는 “작가로서 한국에 돌아온 만큼 자신있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차 씨는 서울 용산구 타데우스 로팍에서 열리는 그룹전 ‘지금 우리의 신화’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그는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마고 할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글로벌 미술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우저앤워스 뉴욕 갤러리 그룹전에 참가했으며, 현재 영국 런던의 공공미술관인 화이트채플에서도 한옥을 모티프로 한 설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제이디 차: 가택 신, 동물 수호자와 용서를 위한 5개의 길, 화이트채플갤러리, 런던, 2022년 9월 20일~2023년 4월 30일. 사진: 앤디 키트(Andy Keate), 화이트채플갤러리 제공
전시장에서 만난 차 씨는 그림 속 강렬한 모습과 달리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품에 영감이 된 마고 할미 신화와 바리 공주 설화가 언급되자 이내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신화 속 마고 할미는 오줌과 대변으로 강과 산을 만들었다”며 “우리 사회에서 종종 무시 당하는 존재인 할머니를 파워풀한 존재로 그려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제이디 차: 가택 신, 동물 수호자와 용서를 위한 5개의 길, 화이트채플갤러리, 런던, 2022년 9월 20일~2023년 4월 30일. 사진: 앤디 키트(Andy Keate), 화이트채플갤러리 제공
런던과 서울 전시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조각보’ 또한 이런 맥락이다. 그는 “주류 미술사에 익숙한 사람은 이모양을 보고 몬드리안을 떠올리지만, 내가 영감을 받은 것은 한국의 이름모를 여인들“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엄마가 딸에게, 그 딸이 또 딸에게 말과 손으로 전해준 예술로서 ‘조각보‘의 가치를 끌어온 것이다.
제이디 차. 사진제공: 타데우스로팍
이러한 작품 스타일은 결국 그녀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차 씨는 자화상 왼편에 있는 갈매기를 가리키며, “캐나다에서 갈매기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높은 하늘을 유영하는 갈매기는 리처드 버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 속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갈매기는 캐나다와 한국 어느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했던 자신을 상징하는 듯 했다. 차 씨는 “내 작품을 서양인은 동양적이라고, 한국인은 서양적이라고 느껴 흥미롭다”고 했다.
너무 다른 두 문화 가운데서 차 씨는 기존의 틀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조각보, 갈매기, 마고할미 등 틀에서 밀려난 것들을 모아 자신의 무기로 만들었다. 그녀의 예술적 생존법은 독특한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갑옷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었음을 작품은 보여준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