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겨울실종’ 첫 토론 의제로
지난해 12월 28일 독일 남부 렝그리스의 한 스키장에 푸릇푸릇한 잔디가 가득하다. 해발 700m 이상의 산악 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겨울 스포츠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올겨울 내내 이상 고온이 이어지면서 눈이 크게 부족한 상태다. 스키장 뒤편의 산맥에도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렝그리스=AP 뉴시스
유럽 곳곳에서 평년 겨울보다 기온이 크게 높아 ‘겨울이 실종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스위스 다보스에서 16일 개막한 ‘2023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도 첫날부터 기후변화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참가자들은 이상 기후가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 위험을 높이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며 각국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이상 기후 때 말라리아, 경기 침체 때 결핵 위험 증가”
이날 첫 토론은 학계와 시민단체가 ‘자연과의 조화’를 주제로 열었다. 게일 화이트먼 영국 엑서터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공개 토론에는 아프리카 차드 시민단체 ‘AFPAT’ 힌두 우마루 이브라힘 회장 등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브라힘 회장은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 등은 자연 문제에서 비롯되는데도 기후변화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며 “에너지 기업은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방 안의 코끼리’인데도 기후변화(방지)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비판해 큰 박수를 받았다.세계 최대 보건펀드 ‘에이즈·결핵·말라리아와 싸우는 글로벌펀드’ 피터 샌즈 사무총장도 지난해 파키스탄 대홍수, 2021년 모잠비크를 강타한 사이클론 등을 거론하며 “극단적 기상 이변 때 말라리아 확산이 일반적”이라고 우려했다. 홍수와 태풍으로 물이 많이 고이면 말라리아 매개체인 모기를 끌어들여 인간 또한 감염에 크게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변화로 세계 모기 서식지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냐 에티오피아같이 과거 서늘했던 동아프리카 고지대 기온이 예전보다 크게 올라 모기가 늘어 말라리아 위험 또한 커졌다는 의미다.
로이터통신도 ‘기후 변화로 말라리아가 증가하고 경기 침체로 결핵이 증가한다’는 분석을 소개했다. 샌즈 총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양극화 등으로 결핵,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같은 개발도상국 최빈곤층이 결핵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올해 세계 경제 침체 전망이 많은 데다 결핵 취약 국가 저소득층 중심으로 각종 전염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 4년 만의 ‘엘니뇨’ 우려도 고조
폭염이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를 덮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올해 4년 만에 엘니뇨가 발생해 이례적인 더위가 찾아올 수 있다는 과학계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동태평양 수온이 예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인 엘니뇨는 가뭄과 홍수를 부르고 산불을 초래한다.유럽 31개국 문화장관들은 올해 포럼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연대 ‘다보스 바우쿨투어 동맹’을 만들었다. 바우쿨투어는 지속가능하며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과 도시를 보존하고 개발하는 행위를 뜻한다.
기후변화 활동가 30여 명은 포럼이 기후변화 대응에 말만 앞세우고 실질적 대책 마련에는 소홀하다며 이날 오전부터 참석자들이 이용하는 다보스 인근 공항 비행장의 진입로 등을 막아서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