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마이클 잭슨 ‘Human Nature’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남성, 백인, 미국, 중장년.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 잡지 ‘롤링스톤’을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풀어 쓴 걸 한 번에 이어서 설명하자면 ‘미국의 중년 백인 남성이 듣는 록 음악’이 이 잡지가 가장 선호하는 장르였다. 그래서 ‘롤링스톤’은 꼰대 잡지로 불렸다. 잡지가 가지고 있는 위상이나 영향력만큼 비판의 크기도 커져 갔다.
세상은 변했다. ‘롤링스톤’도 변화를 택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너무 급박해 어느 누구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너무 의식해서인지 ‘롤링스톤’이 선정하는 각종 순위에서 비백인, 여성, 청년 음악가를 앞에 세우며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편승’이란 낱말이 절로 떠오르는 게 최근 ‘롤링스톤’의 행보다. 변화는 좋다.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최근 ‘롤링스톤’에서 공개한 ‘역대 위대한 가수 200’ 순위가 대표적이다. 이 순위는 한국의 언론에서도 많이 소개됐다. 아이유와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각각 135위와 19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 가수가 다른 매체도 아닌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대 위대한 가수’ 명단에 오른 건 기쁜 일이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86이라는 숫자 하나만으로 ‘롤링스톤’의 이번 순위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마이클 잭슨보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85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제시한 기준인 독창성과 영향력, 음악적 유산을 따졌을 때 85명이 있을 순 없다.
마이클 잭슨 앞에 있는 가수들의 이름은 음악 팬들을 더 황당하게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이 이룬 성과나 성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젊은 여성 가수들의 높은 순위는 과유불급이란 말이 절로 떠오르게 한다. 마이클 잭슨을 예로 들었을 뿐 납득할 수 없는 순위는 더 많다. 미국의 목소리라 불리던 냇 킹 콜과 토니 베넷은 순위에조차 들지 못했고,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케리와 함께 ‘3대 디바’로 불리었던 셀린 디옹 역시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이들의 배제 이유가 ‘나이 듦’ 또는 ‘백인’ 때문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당장 1위부터 11위까지는 모두 흑인 가수의 차지였다.
이쯤 되면 ‘롤링스톤’에서 이야기하는 ‘위대한 가수’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백인 록 음악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롤링스톤’의 변신은 놀랍다 못해 당황스러울 정도다. 농담을 섞어 ‘롤링공정’이라 불러도 될 만한 억지스러운 행위다.
‘롤링스톤’ 덕분에 마이클 잭슨의 ‘Human Nature’를 오랜만에 들었다. 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그리고 이 아름다운 목소리가 담긴 위대한 앨범 ‘Thriller’를 발표한 가수의 순위가 겨우 86위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엉터리일 리는 없다. 그러니 ‘롤링스톤’의 이번 순위가 엉터리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