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전기차 충전소에서 전기차들이 충전을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75억 달러를 들여 미국 전역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가운데 미국에선 전기차 판매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충전소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레스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16일(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의 한 전기자동차 충전소. 4개의 충전기 중 3곳에서 충전이 한창이었다. 자신의 아우디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던 버디 씨(51)는 “80% 정도 충전되려면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며 “공휴일이라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로 바꾼 것에 후회는 없다”면서도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충전소 부족과 잦은 고장으로 불편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전기차가 많아지면서 스마트폰 앱으로 충전소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와도 그사이 다른 사람들이 충전기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고장이 나 있는 충전기도 많아 다른 충전기를 찾느라 시간 낭비를 한 적도 많습니다.”》
미국은 전기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세액공제)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내놓는 등 전기차 확대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운송수단을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목표를 내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부터 전기차 충전소 확충 등 대대적인 전기차 기반시설 투자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에 전기차 충전업체는 물론이고 전통의 자동차 업체들도 전기차 충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 규모가 커지는 속도에 비해 전기차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 속도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의 일환으로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할 때 55% 이상의 미국산 자재를 쓰도록 해 충전소를 대폭 확충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가정용 태양광발전 등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전기화(electrification)’ 정책을 전 분야에서 확대하고 나서면서 극심한 인력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전기차 전환 본격화하는 美
자동차 시장 조사 업체 LMC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선 80만 대 이상의 전기차가 판매됐다. 이는 지난해 판매된 전체 자동차 중 5.8% 수준이다. 중국(19%), 유럽(11%)에 비하면 아직 비중이 높지 않지만 2019년 1.4%에 비하면 3년 만에 3배 이상으로 커진 것. 지난해 미국에서 전체 신차 판매 대수가 8%가량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전기차 시장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전기차가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붐을 일으키고 있다. 체감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전기차 판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났다”고 전했다.미국의 전기차 붐은 전기차 보급이 대폭 확대되는 올해와 내년에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자동차 업체는 물론이고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럽 업체들도 올해부터 생산될 수십 종의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공개한 상황이다. 자동차 컨설팅 업체 AFS 조 매케이브 회장은 미 ABC 방송에 “2025년에는 미국에서 74종의 전기차 모델이 판매될 것”이라며 “2029년에는 전기차가 미국 자동차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IRA를 통해 미국을 전기차 시장의 리더로 이끌겠다고 나선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대대적인 재정을 투입해 전기차 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전기차 충전소 설치를 위해 배정한 75억 달러(약 9조3000억 원)는 올해부터 본격 집행될 예정이다. 이 중 9억 달러(약 1조1000억 원)가량이 올해 미국 전역의 고속도로 전기차 충전소 설치 사업에 투입된다. 2028년까지 96억 달러(약 12조 원)를 들여 6만 대의 전기차를 구입하기로 한 미국 연방우체국(USPS)은 올해 말부터 전기차를 통한 우편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각 주 역시 10년 내 휘발유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잇달아 추진하며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가 지난해 가장 먼저 2035년까지 휘발유 자동차 판매 금지를 발표한 가운데,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역시 2035년부터 휘발유와 디젤 차량 판매를 금지하는 배출가스 제로 정책을 시행한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현재 탄소 배출 차량 판매 금지 정책을 도입하거나 이를 검토하고 있는 곳은 모두 17개 주에 이른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도 걸림돌
미국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의 일환으로 전기차 충전소 건설 시 55% 이상의 미국산 건설자재와 부품을 사용해야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충전소 확충 속도가 더딜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레스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미국의 급속한 전기차 전환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늘어나는 전기차에 비해 전기차 충전소 보급이 이를 따라잡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미국 내 전기차 충전소가 모두 5만4000곳으로 14만5000여 개의 충전기가 갖춰져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는 부족한 고속도로 전기차 충전소 설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충전기를 설치하는 가정엔 설치 비용의 30%까지 최대 1000달러의 보조금(세액공제)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모빌리티는 전기차 증가에 따른 충전 수요를 충족하려면 미국 내 전기차 충전소가 2년 내 4배, 2030년까지는 8배로 증가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바이든 행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도 충전기 확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IRA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소 건설 시 55% 이상의 미국산 건설자재와 부품을 사용해야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충전기 부품의 상당수가 외국산인 상황에서 부품을 대체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데다 고장과 불량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충전소 건설 비용 상승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산 철강을 사용하면 한국과 중국 등 외국산 철강을 사용할 때보다 충전소 설치 비용이 평균 6배 이상 높아진다는 것. 이에 따라 미국 충전기 업체들은 바이든 행정부에 전기차 충전소 설치와 관련해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 적용을 늦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