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이킨스 ‘생각하는 사람’, 1900년.
‘생각하는 사람’을 주제로 작품을 만든 건 오귀스트 로댕만이 아니었다. 로댕과 동시대를 살았던 미국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도 같은 제목의 초상화를 그렸다. 세로로 긴 캔버스에는 실물 크기의 남자가 묘사돼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서 있다. 도대체 그는 누구고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일까?
필라델피아 출신의 에이킨스는 필라델피아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생애 대부분을 고향에서 화가 겸 교육자로 살았다. 인체를 직접 보면서 해부학적으로 관찰해 그린 초상화와 누드화로 유명했다. 그의 초상화는 모델을 이상화하지 않고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의뢰인에게 퇴짜 맞기 일쑤였다. 고객이 거의 없었기에 주로 친구나 가족, 제자들을 모델로 그렸다. 이 그림 속 남자도 친구이자 처제의 남편인 루이스 켄턴이다. 잘 차려입은 그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실내에 서 있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머리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일반적으로 초상화 속 귀족이나 중산층 남자들은 앞을 응시하기 마련인데, 켄턴은 자기성찰적인 모습이다. 지적이면서도 고독한 미국 중산층 남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초상화로 평가받는 이유다.
사실 켄턴의 삶에 대해 알려진 건 거의 없다. 필라델피아 출신 곡물상의 아들로 시의 회계를 담당하는 서기였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켄턴이 에이킨스의 처제와 결혼한 건 1899년 5월. 아마도 이 그림은 두 사람의 결혼 선물로 그려졌을 것이다. 화가는 부부가 된 친구와 처제의 행복을 빌며 선물했겠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짧게 끝났다. 이는 켄턴의 폭력성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