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속 ‘토끼와 달’ 인도 ‘회토사상’ 동아시아로 퍼져 삼국시대 고분-고구려 벽화에도 등장 새해 첫 묘일은 ‘장수 비는 날’, 명주실 팔에 감거나 옷고름에 매달아
조선시대 문자도 ‘치(恥)’. 달 속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 매화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다. ‘백이 숙제가 죽은 뒤 해마다 매화꽃이 피고 달빛이 밝게 빛났다(首陽梅月 夷齊淸節)’는 고사를 형상화한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3월 6일까지 개최하는 ‘새해, 토끼 왔네’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소퇴도 배를 갈라 간이 들었으면 좋으려니와 만일에 간이 없고 보면은 불쌍한 토명만 끊사오니 누굴 보고 달라 허며 어찌 다시 구허리까? 당장에 배를 따서 보옵소서!”
판소리 수궁가에서 토끼가 간을 빼먹으려는 용왕을 속이는 대목이다. ‘교활한 토끼는 굴이 셋’이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토끼는 영리함의 상징이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전통문화 속 토끼를 알아봤다.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네 번째 동물인 토끼는 방향으로는 정동(正東)이고, 시간으로는 오전 5∼7시에 해당한다. 달로는 음력 2월을 지키는 방위신(方位神)이다. 토끼는 특히 노랫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동요 ‘반달’)에서처럼 달에 사는 동물로 인식돼 왔다.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 설화에서도 토끼가 달과 연결된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숲속에서 먹을 것을 찾자 수달은 물고기를 바쳤고, 원숭이는 과일을 바쳤다.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토끼는 자신의 살을 구워 바치려고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려 했다. 토끼에게 감명받은 스님은 토끼를 달에 보내 살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문화가 전래된 이후 축조된 삼국시대 고분에 달 속 계수나무 밑에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모습이 나온다. 고구려 벽화의 동물화 속 토끼도 달의 상징으로 파악된다.
창덕궁 대조전 뒤뜰 굴뚝에는 토끼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경복궁 교태전 뒤뜰 석련지에도 두꺼비와 함께 토끼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달에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여성의 소망을 토끼 장식으로 상징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동물민속론’(2003년)에 따르면 새해 첫 묘일(卯日)인 상묘일(上卯日·토끼날)은 장수를 비는 날이었다. 남녀 모두 명주실을 청색으로 물들여 팔에 감거나 옷고름에 매달면 명이 길어진다고 믿었다. 또 이날 베틀에 올라가 베를 짜야 장수한다고 전해졌다. 반면 토끼를 ‘방정맞고 경망한 짐승’으로 여기며 이날을 꺼리기도 했다. 경기 지역에서는 이날을 ‘톳날’이라 부르며, 과거 머슴이나 식모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전남 지역에서는 이날이 ‘방정맞은 날’이라고 하여 어부들이 출항하지 않았다.
토끼 무늬 베갯모판.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